“자유로운 젊은 여성의 성 의식은 한국적인 것에 대한 반란”
며칠간의 현장 취재결과 10~20대 여성들의 성 의식은 기자가 평소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자유로웠다. 10대 고교 커플의 경우 손을 잡거나 키스 또는 포용은 예사다. 밤이면 학교 구석진 곳이나 모텔 등에서 성 관계를 갖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서울 소재 한 고교 교사는 “한 반에서 20~30%의 학생들은 성 경험이 있다고 봐야한다. 일일이 따라다니며 관리 감독하는 건 사실상 힘들다”고 말했다.
20대 대학생들은 더욱 대담했다. 교내 벤치나 풀밭, 길거리에서 포옹을 하거나 스킨십을 나누는 커플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학교 주변 모텔이나 DVD방, 노래방은 물론이고 캠퍼스에서 성 관계를 갖는 커플들도 많다고 한다. <동아닷컴 16, 21일 기사 참조>
“소극적이던 여성들 성에 대해 대담 당당해져”
커플들의 성 관계가 자유로워진 밑바탕에는 여성들의 성 의식 변화가 깔려있다. 소극적이던 모습에서 탈피해 대담하고 당당해진 것이다. 최근 1년 내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한 케이블TV의 설문조사 결과 10명 중 4명(40%)은 20~25세, 18%는 26∼30세에 첫 경험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고등학생기인 16∼20세도 6%나 됐다.
캠퍼스헤럴드가 지난해 8월 대학생 248명(남자 120명, 여자 12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여대생 10명 중 7명이 “남자 친구가 원할 경우 성 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답했다.
스포츠조선이 수도권 8개 대학 1학년 신입생 394명(남자 185명, 여자 209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10명 중 3명(28.2%)이 성관계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절반 이상(52.3%)은 고등학생 때 첫 관계를 가졌고, 여학생(52.7%)의 비율이 남학생(52.1%)보다 높았다.
이에 대해 학계는 개인의 선택 범위 확대, 세계화, 전통적인 윤리관 와해 등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풀이했다.
고려대 사회학과 박길성 교수는 “우리 사회도 개인 선택권 등을 자유롭게 행사하겠다는 의식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 자기 선택의 범위와 내용의 폭이 확대되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또한 “세계화의 영향도 큰 듯하다”며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외국 문화에서 신세대들이 학습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한 교수(사회학)는 “지난 30년간, 특히 외환위기 이후 우리의 전통적인 윤리의식 등 한국적인 것들이 와해됐고 전통 문화에 바탕을 둔 발전 모델도 무너졌다”며 “지금 나타나는 성 해방 의식도 한국 사회의 가치관이나 규범을 결정했던 한국적인 것에 대한 회의 또는 반란이다. 과거 한국적인 것에서 무기력한 부분을 빨리 떨쳐버리려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성이 성적으로 개방화됐다고? 이는 남녀차별적인 시각”
여성단체들은 “여성보다 남성의 성 경험이 훨씬 많다”며 여성의 성 의식을 개방화 관점에서 받아들이는 사회 분위기를 비판했다.
‘아하! 청소년성문화센터’ 박현이 기획부장은 “여성에 비해 남성의 성적 경험이 훨씬 많지 않느냐”며 “청소년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여성의 성 의식이 과거에 비해 개방적이 됐다고 말하는 건 남녀 차별적인 시각”이라고 했다.
또 다른 여성단체의 한 간사는 “여성들의 성 의식은 남자들의 성 개방 수준에 훨씬 못 미친다”며 “상황이 이런데도 여자들만 지적해서 옛날보다 개방적이 됐다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따졌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은 여성의 성 의식을 따지기 보다는 성 관계 때 피임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지, 만약 임신을 하게 되면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피임·성관계 과정 등 구체적인 성교육 이뤄져야…”
박길성 교수는 여성의 성 의식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인 만큼 비뚤어진 시각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신세대들의 개방적인 성 의식이 사회 범죄나 일탈 등 도덕적으로 포용할 수 없는 일들을 저질렀을 때는 문제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의식이 변하고 가치관이 다양화되는 현상을 잘못됐다고 봐서는 안 된다.”
그러나 자유분방한 성 관계가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 중 하나가 낙태다. 한국에이즈퇴치연맹이 지난달 서울시내 중ㆍ고생 29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성 경험이 있는 여고생 4명 중 1명(26.9%)이 낙태를 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런 현상에 대해 박현이 부장은 일선 학교에서 오늘날 실정에 맞는 성 교육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학교에선 피임이나 스킨십 상황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교육하지 못하고 있다. 성행위 과정과 성 관계를 하게 될 경우 ‘내가 어떤 준비가 돼 있어야 하는가’ 등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성행위 이후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결과들을 예측할 수 있도록 역할극 같은 것들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그는 “스킨십에 대해 여학생들은 키스 정도까지 생각하는 반면 남학생들은 포르노를 본 경험 같은 게 작용해 성관계 상황까지 상정하고 있다. 키스 이후 상황이 되면 여학생들은 당황해하면서 남학생들에 이끌려가는 ‘피주체’가 되고 만다. 본인이 원하지도 않고 주체적으로 참여하지도 않는 과정에서 행복하지 않은 경험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우려했다.
“‘출혈=처녀’라는 잘못된 개념 버려야…”
20대 여성들은 혼전 순결에 대해서 얽매임이 없다. 케이블TV의 조사에서 10명 중 7명이 “혼전 순결을 반드시 지킬 필요가 없다”고 답했다. 캠퍼스헤럴드 조사에선 86.1%가 ‘혼전 순결은 중요하지 않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러나 일부 여성들은 결혼 전 처녀막 재생수술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안전성과 위생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중국산 처녀막 대용품(인조 처녀막)까지 등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결혼을 앞두고 ‘처녀막 재생수술’을 받으러 오는 여성들이 심심치 않게 있다. 그 수술을 전문적으로 하는 병원도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결혼을 전제로 성 관계를 가졌고 그 남자와 결혼한 여성들이라면 수술을 할 필요가 있겠느냐”며 “수술은 해주지만 우리사회의 이중적인 의식구조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운을 뗀 뒤 “지금 한국 사회는 사회가 일반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항목과 자유로운 자기 선택 부분이 공존하고 있다”며 “이에 비춰보면 모순이라기보다는 아주 솔직한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최두석 교수는 “처녀막 재생수술은 결혼 첫날 밤 성 관계를 가졌을 때 출혈이 일어나도록 인위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일 뿐”이라며 “성 관계를 가지기 전의 처음 상태로 원상회복 시켜주는 게 아니기 때문에 큰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고 조언했다.
최 교수는 또한 “첫 관계에서 출혈이 없는 여성도 많다”며 “학교 현장에서 성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남녀 모두 잘못된 개념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다. 출혈이 처녀를 판단하는 기준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도 했다.
박 부장은 “혼전 성경험 유무보다는 남녀 사이의 성 관계가 서로 존중하고 평등하게 주체적으로 그리고 동의 하에 이뤄지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승훈 동아닷컴 기자 h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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