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처 매주 부처회의… 사실상 홍보지침 내려”

  • 입력 2007년 5월 28일 03시 05분


“홍보 관계자들을 ‘커뮤니케이터가 아닌 ‘싸움꾼’으로 전락시켰다.” “국정홍보처가 앞장서서 국정 홍보를 퇴행시켰다.”

최근 국정홍보처의 기자실 통폐합 조치 발표에 대해 ‘신(新)언론통제’라는 비판이 확산되는 가운데 현 정부의 홍보 관련 요직을 지낸 관계자들은 “비판적 보도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대응 지시로 각 부처의 홍보 관계자들이 말 못할 고충을 겪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국정홍보처의 권력기관화=매주 국정홍보처는 차장 주재로 각 부처 홍보관리관을 참석시킨 가운데 한 주의 언론보도 및 대응에 대한 토론 및 평가회의를 갖는다. 전직 홍보 관계자들은 이 자리가 사실상 ‘홍보 지침’을 받는 자리라고 털어놓았다.

일부 부처는 “왜 그 기사가 동아, 조선(일보)에만 보도됐느냐”, “왜 동아, 조선이 후원하는 행사를 지원하느냐”는 따가운 질책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정부 부처의 홍보 요직을 지낸 A 씨는 “한번은 청와대 관계자가 그 회의 자리에서 연배가 훨씬 높은 홍보관리관들을 노골적으로 망신 주는 발언을 해 입술을 깨물고 참은 적이 있었다”며 “정부의 언론정책에 대해 ‘코드’와 다른 발언을 하면 ‘장관에게 직접 전화하겠다’고 나오니 할 말이 있어도 속으로 삼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회의에서는 “기자들이 뭐라고 해도 밀고 나간다”는 ‘자화자찬’만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

한 부처의 홍보관리관을 지낸 B 씨는 “홍보처의 평가업무 담당자들에게 각 부처 홍보부서가 조언을 구한다는 명분으로 식사 대접을 한 적도 있었다”며 “일부 부처에선 장관을 한국정책방송(KTV)에 출연시켜 달라고 매달리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홍보처 관계자는 “장차관의 KTV 출연이 평가 요소이기는 하다”면서 “그러나 해당 부처가 적극적으로 노력하면 얼마든지 출연할 수 있으며 일부러 부탁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홍보처 차장 주재 회의에 대해서도 “참석자들이 자연스럽게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라며 “일방적인 지침을 내리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문제 보도’ 대응은 반드시 보고=일부 관계자는 “각 부처의 홍보 관계자들이 실제 업무보다 국정홍보처의 ‘코드’에 맞춰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골몰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 부처의 홍보관리관을 지낸 C 씨는 “부처의 정책에 대해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내용이 보도되면 이른 새벽부터 청와대 관련 비서실로부터 ‘대응하라’는 전화가 걸려오기 일쑤”라고 술회했다. 여기서 ‘대응’이란 비판적 보도를 한 기자와 매체를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하거나 법적 조치를 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이에 따라 각 부처의 홍보 관계자들은 매일 오전 문제의 보도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를 국정홍보처에 반드시 보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보처의 ‘줄 세우기’=홍보 관계자들은 국정홍보처의 정부 부처 ‘줄 세우기’도 대표적인 폐해로 꼽았다. 국정홍보처는 매년 각 부처의 ‘홍보 성적’을 평가해 점수를 산출하고 순위를 매겨 공개하는데 주된 평가요소가 언론 보도에 대한 대응 건수라는 것.

다른 부처의 전직 홍보관리관 D 씨는 “각 부처의 특성과 취재 여건을 무시한 채 ‘언론과 얼마나 싸웠느냐’를 주된 잣대로 일등부터 꼴등까지 순위를 매기다 보니 홍보 부서 관계자들의 원성이 자자하다”고 말했다.

특히 낮은 순위가 매겨진 부처의 장관들은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왜 우린 이것밖에 못하느냐”는 유무형의 질책을 받는 홍보 관계자들은 좋은 점수를 따기 위해 마지못해 ‘언론과의 전투’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관계자들은 토로했다.

홍보 관련 요직을 지낸 E 씨는 “홍보처가 매긴 순위가 계속 하위권을 맴돌 경우 홍보 관계자들은 인사상 직간접적 불이익을 받을 게 뻔하니 기를 쓰고 ‘언론 발목 잡기’에 나서는 형국”이라고 비판했다.

▽민간 홍보회사에 용역 맡기기도=홍보처에 잘 보이기 위해 골몰하다 보니 ‘웃지 못 할 일’도 벌어진다고 일부 관계자는 꼬집었다. 몇 년 전 국정홍보처 주관으로 청와대 고위 인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홍보 관계관 세미나에서는 각 부처의 홍보 관계자들이 언론 대응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발표하며 우수 부처를 시상하는 행사가 열렸다.

당시 행사에 참가한 모 부처의 전 홍보관리관 F 씨는 “일부 부처에서 발표 자료를 너무나 잘 만들어 나중에 알아보니 수백만 원의 예산을 들여 민간 홍보전문회사에 맡겼다는 얘길 듣고 허탈하기 이를 데 없었다”며 “과연 누구를 위해 홍보를 하는 것인지 자괴감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이에 홍보처 관계자는 “중요한 발표 자료를 잘 만들기 위해 부처에 따라 외부 전문가에 맡겼을 수도 있다”며 “우리는 발표 내용만을 보고 평가할 뿐”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반론보도문]본보 5월 28일자 A4면

본보 5월 28일자 A4면 기사의 ‘매주 국정홍보처는 차장 주재로 언론 보도 및 대응 평가 회의를 갖는다’는 데 대해 홍보처는 매주 열리는 홍보처장 주재의 전략회의는 정책홍보 협조사항을 논의하는 자리며, 홍보평가 중 언론대응 비중도 전체의 10%라고 밝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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