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칭입니다.
‘식스 센스’(1999년)로 미국 할리우드에서 일약 스타 감독이 된 그는 상상도 못할 영화 속 반전으로 늘 우리의 뒤통수를 때립니다.
샤말란의 2004년작 ‘빌리지(The Village)’도 마찬가지입니다.
괴물이 속출하는 산속 마을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괴물의 정체가 밝혀지는 클라이맥스에서 우리를 아연실색(啞然失色)하게 만듭니다.
여러분, 혹시 아시나요?
이 영화에 등장하는 마을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에 대한
은유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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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토리라인
사방이 숲으로 둘러싸인 마을. 소수의 사람들이 자급자족을 하며 평화로운 공동체 생활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마음속엔 뿌리 깊은 두려움이 있었죠. 마을의 경계 밖으로 나가려는 시도를 하면 흉측한 괴물에게 죽임을 당한다는 공포였습니다. 평소 마을 경계 밖에 사는 괴물은 시시때때로 마을로 들어와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곤 했습니다.
어느 날 청년 루시우스(와킨 피닉스)가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집니다. 평소 정신질환을 앓았지만 순박한 마음을 잃지 않았던 노아(에이드리언 브로디)의 칼에 맞은 것이죠. 노아는 어려서부터 자기를 진정 따뜻하게 대해 줬던 여성 아이비가 루시우스와 사랑에 빠지자, 질투심을 견디다 못해 루시우스를 찌르고 말았습니다.
시각장애로 앞을 볼 수 없는 아이비. 그녀는 아버지이자 마을 지도자인 에드워드(윌리엄 허트)에게 “루시우스를 치료할 약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마을 밖으로 나가겠다”고 선언합니다. 고민을 거듭하던 에드워드. 그는 결국 마을과 괴물에 얽힌 엄청난 비밀을 딸에게 들려줍니다.
[2] 핵심 콕콕 찌르기
그렇습니다. 괴물이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오래전 바깥세상에서 폭력적인 범죄로 가족을 잃었던 끔찍한 기억을 갖고 있는 마을 원로들. 에드워드를 중심으로 한 그들은 수십 년 전 야생동물보호구역 한가운데에 이 마을을 만든 뒤 자손을 낳으면서 외부와 단절된 자신들만의 평화로운 마을을 유지해 왔던 것입니다. 거짓으로 괴물의 옷을 입고 괴물의 존재를 꾸며내 주민들이 마을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조종하면서 말입니다.
늘 두려워하던 괴물은 실체가 없었다? ‘진짜 괴물’은 마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고 있는 두려움, 그 자체였다? 마을 사람들이 외부와의 소통을 단절한 채 배타적인 삶을 사는 근원적인 이유는 흉악한 범죄에 대한 끔찍한 기억 때문이었다?
마을의 이런 모습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어떤 사건이나 대상을 퍼뜩 떠오르게 하진 않나요? 잘 생각해 보세요. △어떤 끔찍한 사건을 겪은 뒤 △마음의 문을 닫고 폐쇄적인 삶으로 전환하면서 △통제된 삶을 자처하고 △마음속에 더 큰 공포를 키워 가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
그렇습니다! 영화 ‘빌리지’는 과격 이슬람 테러조직에 의해 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 일어난 테러, 즉 ‘9·11테러’ 이후 급속하게 변해 가고 있는 미국에 대한 거대한 은유였던 것입니다. △끔찍한 테러를 경험한 뒤 △스스로 마음의 빗장을 닫은 채 △내부 구성원들(아랍계 미국인)을 더욱 감시 통제하고 △‘제2의 9·11테러가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더 큰 공포에 떨고 있는 미국(인들)의 모습 말입니다.
알고 보니, 영화 제목인 ‘빌리지(Village)’는 ‘미국’의 다른 이름이었던 것입니다. 진짜 괴물은 저 바깥에 있는 게 아니라, 마을 사람들(또는 미국 사람들)의 마음속에 두려움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영화는 말하고 있죠. 영화에서 “마을 곳곳이 비밀로 가득해요. 그게 느껴지지 않아요?”라고 절규하는 청년 루시우스에게 어머니(시고니 위버)는 말합니다.
“그건 우리 자신을 위해 그런 거란다. 과거에 존재했던 악한 것들을 묻어 두고 잊기 위해서…. 하지만 잊는다는 건 그걸 다시 태어나게 만들지. 다른 형태로 말이야.”
진정 위대한 대사입니다. 이 말은 “9·11테러라는 과거의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지금 스스로 고립된 삶을 선택했어. 하지만 악몽을 잊을 수 있을 줄로만 알았던 당초의 생각은 오산이었어. 그 악몽은 다른 형태로 다시 태어나고 있어. 우리 마음속의 공포로 말이야”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겠죠.
이런 뜻에서 이 영화를 연출한 샤말란 감독이 인도 출신이란 점은 의미심장합니다. 9·11테러 이후 비이성적으로 변해 가는 미국의 모습을 비판적 시각으로 볼 수 있었던 건 샤말란 같은 제3자만이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니까요.
[3] 알쏭달쏭 퀴즈
이 영화에서 색깔은 영화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중요한 상징입니다.
우선 ‘빨간색’은 ‘한 사회에서 금기시되는 어떤 것’을 상징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빨간색 옷을 입을 수 없을뿐더러 빨간색 열매나 꽃도 보는 즉시 제거해야 하니까요. 결국 빨간색은 마을에서 금기시되는 인간의 마음, 즉 ‘자유’에 대한 상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자유를 스스로 짓밟고 반납했던 거죠.
이번엔 ‘노란색’을 보죠. 노란색은 빨간색의 대척점에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노란색이 괴물로부터 자신들을 지켜 주는 ‘안전한 색’이라고 믿었지만, 기실은 스스로를 통제했던 ‘억압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런데 참 궁금한 게 있습니다. 죽음의 문턱에 선 루시우스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마을 경계 밖으로 뛰쳐나가는 여성 아이비, 그녀는 왜 하필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으로 설정이 되었을까요? 아이비가 앞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어떤 속뜻이 숨어 있는지를 밝혀 보는 것이 오늘의 문제입니다.
여러분, 아이비가 공포로 얼룩진 마을의 경계를 넘어설 수 있었던 건 사랑의 힘 덕분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두려움을 녹이는 건 사랑입니다. 9·11테러 이후 두려움의 감옥에 스스로 갇혀 버린 미국인들, 그들이 공포의 경계를 빠져나와 진정한 자유를 되찾으면 좋겠습니다. ‘빨간색 꽃’을 더는 꺾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정답은 다음 동영상 강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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