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선관위 내부에서는 청와대의 강경 대응 소식에 당혹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선관위의 한 간부는 “선관위는 다른 국가기관과 달리 부정선거에 염증을 낸 국민의 요구로 만들어진 기관이다. 이런 기관이 정당성을 갖고 결정한 부분은 존중돼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대선이 6개월여밖에 남지 않았는데 이렇게 조직을 흔들어 놓으면 선거 관리를 잘할 수 있을지 염려스럽다”고 우려했다.
양금석 공보관은 “선관위는 이미 발생한 사안에 대해 선거법을 위반했는지만 판단할 뿐”이라며 “위원 전체회의는 재판이 아니며 변론 성격의 반대 의견이 들어온 전례도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이날 저녁 선관위에 제출한 법리적 의견서와는 별개로 의견 진술 기회 부여 요청서를 낸 데 대해 선관위는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의견 진술을 듣거나 변론 기회를 준 적은 없다”고 말했다.
김호열 중앙선관위 상임위원은 이날 “청와대와 정당들이 어떻게 이야기하든 양심과 법리에 따라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은 이날 본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청와대가 소명자료를 보내올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다”면서 “그렇지만 선관위원들은 모두 법률 대가이며 법률적 소신을 갖고 있다. 거기에 구속될 사람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 위원은 고현철 중앙선관위원장을 포함해 선관위원 9명 중 유일한 상임위원이며 2005년 12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선관위 사무총장을 지냈다.
김 위원은 “선관위는 합의제 기관이어서 쟁점 사항은 위원회에서 결론을 내린다. 최고의 법률 대가들이 법리에 입각해서 합리적으로 판단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청와대가 선관위 결정에 불복할 가능성에 대해 “견해차는 있을 수 있다. 법리적으로 선관위가 자기들 견해와 다를 때 헌법에 관한 한 최고 결정권자는 헌법재판소니 한번 받아보자고 할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청와대의 헌법소원 청구 계획 공표에 대해 “내가 대통령이 하는 일에 대해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라고 말했다.
김 위원은 노 대통령의 발언이 자주 선거법 위반 논란이 되는 데 대해 “예전에는 써 준 것만 또박또박 했는데…. 조금만 더 기다리면 결론이 나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선관위, 盧대통령 의법처리해야”▼
한나라당 김형오 원내대표는 5일 “노무현 대통령이 참여정부평가포럼(참평포럼)에서 한나라당과 야당 대선후보들을 막말을 써 가며 부당하게 공격했다”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행위를 철저하게 조사해 의법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임시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말이 참평포럼이지 친노(친노무현)포럼 아니냐. 이번 대선에 개입하려고 만든 노무현신당이다”며 “참평포럼을 즉각 해체하라”고 주장했다.
그는 “민주주의를 떠받치고 있는 두 개의 기둥인 언론 자유와 정당정치가 밑둥치부터 흔들리고 있다”면서 “소위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은 국민의 알 권리를 제한하는 언론 탄압으로 즉각 원상 복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 원내대표는 또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선 개입 논란에 대해 “전직 대통령으로서 현실 정치에 깊이 개입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나쁜 선례를 남기지 않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한나라당의 대북정책과 관련해 “강력한 국력과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확고한 우위를 바탕으로 북한 경제의 회생을 도와 남북 경제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적극적 평화론’이 통일 한반도 시대의 기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정부 조직의 전면 개편과 공기업 민영화 등 공공 부문 개혁, 성장 중심 경제, 성장형 복지를 실현해 선진화 개혁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10년을 ‘강물이 옆으로 흘러 생긴 지류의 역사’로 규정한 뒤 ‘좌파정권 잃어버린 10년 백서’를 만들겠다고 했다.
한편 한나라당은 ‘중앙선관위에서 납득하지 못할 결론을 내리면 헌법소원 등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청와대의 방침에 대해 “‘그놈의 헌법’ 운운하는 대통령과 청와대가 갑자기 헌법적 쟁송 절차를 이야기하니 어리둥절할 따름”이라고 비판했다.
나경원 대변인은 “선관위는 권력의 눈치를 보거나 좌고우면하여 면피용 결정을 내리지 않기를 바란다”며 “대통령의 위반 사항이 엄중하다면 주의 및 경고 등 행정조치에 그칠 것이 아니라 검찰 고발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 대변인은 “대통령의 경우 임기 중 공소시효가 정지돼도 퇴임 후에는 형사 소추가 가능한 만큼 선관위는 대통령의 형사 책임이 있는 사안이라면 법에 따라 소신 있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며 “퇴임 후 대통령 기소 여부는 검찰이 결정할 문제”라고 했다.
이종훈 기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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