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멀쩡한 고가설비 폐기해서야▼
한국은 거의 모든 에너지원을 외국에서 수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기 에너지 공급 상황은 세계에서 가장 안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면에는 자체 기술로 이룩한 원자력발전이 있다.
고리1호기는 한국 원자력발전의 초석이었다. 이 대한민국 1호기는 산업 발전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 고리1호기로 한국은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원자력 기술을 활용해 전기를 얻는 나라가 됐다. 고리1호기가 전력을 생산하기 시작한 지 벌써 30년째. 이제 설계수명이 다 되어 연장운전 여부를 놓고 찬반 논의가 뜨거워지고 있다. 필자는 여러 가지 정황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때 연장운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는 설계수명이 다됐으니 운전을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설계수명’이란 어디까지나 ‘30년 정도는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고 설계 당시에 마련한 설정에 불과하다. 한국보다 기술적으로 앞선 미국도 이미 48기의 원전에 대해 연장운전을 허가해 계속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은 한국과 똑같은 기종을 쓰면서도 설계수명을 30년이 아닌 40년으로 잡았다.
일본에서도 이미 12기의 원전이 연장운전을 하고 있다. 영국 프랑스 캐나다 등 선진국도 심각한 논란 없이 연장운전을 실시하는 중이다.
자동차도 정비만 잘 하면 보통 7, 8년 쓰는 것을 20여 년 이상 무리 없이 몰고 다닐 수 있다. 운전면허도 정기적으로 적성검사를 받아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값비싼 기계를 멀쩡한 상태로 폐기하는 것은 낭비다. 경제적 여유가 많은 선진국에서조차 별 문제 없이 연장운전하고 있는 원전을 우리만 수명이 다됐다고 폐기한다면 얼마나 큰 손해인가. 게다가 설계수명의 개념도 잘못 이해하고서 말이다.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고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발전량은 계속 늘어나야 한다. 고리1호기를 닫으면 그만큼의 발전을 위해 새로운 발전소를 건설해야 한다. 원전 1기를 건설하는 데는 무려 2조5000억 원 정도가 소요된다. 같은 전기를 생산하는데 추가로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이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선택인지, 그리고 그것이 결국은 국민 모두가 지는 부담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고리1호기는 선진국 원전보다 고장이 많아 안전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억지 주장에 불과하다. 기술도 부족하고 경험도 일천했던 초기에는 비교적 고장이 빈번해 1990년까지 연평균 6.6건이 발생했다. 경험이 쌓이면서 그 후 2000년까지는 연평균 1.9건으로 크게 줄었다. 그 후 기술은 더욱 발전을 거듭해 2001∼2006년에는 연 0.3건의 고장만 보고됐다. 이 기록은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우수한 기록이다.
한국 기술자들이 각고의 노력과 헌신으로 이렇게 훌륭하게 원전을 관리하고 있다는 점이 나는 무척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한국이 선진국보다 못하다는 선입견은 자기비하일 뿐이다. 한국 원자력 발전의 출발은 늦었다. 그러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다른 나라가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룩한 것을 한국은 매우 짧은 기간에 성취해 냈다. 자신이 노력한 결과로 이룩한 자산을 너무 쉽게 폄훼하지 말자. 기술자들의 능력을 믿어 보자.
김영평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한국원자력정책포럼 회장
▼[반] ‘先투자 後심사’ 맹점부터 개선을▼
연료비가 싼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면 한수원은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이 때문에 안전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기술원의 공정하면서도 철저한 수명 연장 허가심사가 중요하다. 수명 연장의 안전문제와 관련한 세부 쟁점들도 있지만, 필자는 그보다 정부 심사 및 규제 제도의 맹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한수원은 이미 10년 전인 1997년에 고리1호기의 수명 연장을 위해 증기발생기, 터빈, 냉각재펌프 등 몇 천억 원대의 설비를 교체했다. 하지만 정부의 수명 연장 안전성 심사는 이제야 시작되고 있다. 사후에 아무리 공정한 심사를 한들 이미 막대한 공공재원이 투자된 마당에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수명 연장을 돌이키기는 어렵다고 봐야 한다.
이로 인한 첫 번째 문제는 주요 임무가 안전성 심사인 원전 안전규제기관이 원전사업자의 설비투자에 간여할 수 없으므로 자체적인 개선의 여지가 없다는 사실이다. 상식적으로 ‘전기 사업자가 손해가 난다면 무엇 하려 스스로 막대한 설비를 교체해 원전 수명을 연장하겠느냐’는 의문이 들 수 있다.
두 번째 문제는 정부의 심사가 안전성에만 국한돼 있어 설비 교체의 비용효과 즉 경제적 타당성에 대한 체계적 심사가 없다는 점이다.
전기사업은 독점체제다. 당국으로부터 총괄원가보상, 즉 발생한 비용은 그 이유와 상관없이 모두 요금으로 보상되도록 보장받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고가의 설비투자 과정에서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 미국에서 원전 안전규제기관 외에도 공익규제위원회가 원전의 수명 연장과 관련한 설비투자에 대해 별도로 규제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미네소타 주 공익규제위원회는 최근 엑셀 에너지(Xcel Energy)의 프레리아일랜드 원전 1, 2호 및 몬티셀로 원전의 수명 연장 심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미 2002년부터 이들 원전의 증기발생기 교체 계획부터 규제해 왔다. 당시 공익규제위원회는 몬티셀로와 프레리아일랜드 1호기만 증기발생기 교체를 허가했다. 현재 수명 연장 심사에서는 결국 3기의 원전 가운데 몬티셀로 하나만 허가한다는 방침이다. 미국은 이처럼 원전 수명 연장에 대한 인허가 과정을 사업자의 설비투자 과정부터 일관되게 진행함으로써 제도적 실패의 위험을 줄이고 있다.
또한 공익규제위원회의 이 같은 규제 활동은 전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돼 전기 소비자들이 원전 사업자의 수명 연장과 관련 활동에 대해 적절한 시점에 의사표현을 할 수 있게 보장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산업자원부가 이제서야 고리1호기 수명 연장에 대해 주민 동의를 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10년 전에 수명 연장용 시설투자를 한 마당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다. 어찌 보면 고리1호기는 정부의 임무 방기로 이미 소비자들이 의사를 개진할 기회를 놓쳤다고 볼 수 있다.
한수원은 이미 2013년 설계수명이 종료되는 월성1호기의 연장을 위해 캐나다원자력공사에 3000억 원대의 설비교체사업을 발주했다고 한다. 고리1호기에 대한 문제 제기를 계기로 정부는 이 같은 제도적 맹점을 바로잡기 바란다.
석광훈 녹색연합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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