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좀 혼자 보면 안 되니? 그러니까 빨리 글자를 배워야지.”
“넌 글자를 아니까 이제 혼자서 책을 봐야 되는 거 아니니?”
간혹 엄마들이 아이에게 이런 말을 할 때가 있다.
말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책 읽기’를 ‘글자 읽기’와 동일시하는 마음이 깔려 있다. 그러다 보니 아이가 글자를 모르면서 혼자 책을 보면 보던 책을 뺏어서라도 직접 읽어 주는 엄마가 있는가 하면 아이가 하루빨리 글자를 배워 혼자서 책을 읽을 수 있게 되길 바라는 엄마도 있다. 또 아이가 글자를 읽게 되면 당연히 혼자서도 책을 잘 봐야 한다고 여기곤 한다.
이런 태도는 아이에게 빨리 한글을 가르쳐 주고, 한글을 어느 정도 뗐다고 하면 혼자 스스로 책을 볼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아이가 한글을 빨리 떼면 세상을 보는 눈이 그만큼 넓어질 거라는 믿음도 깔려 있다. 이른바 ‘아는 만큼 보인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런 마음의 밑바닥에는 책 읽어 주기에서 벗어나고 싶은 엄마의 생각도 깔려 있다.
하지만 아이가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됐다고 세상을 넓게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때로는 글자 하나하나에 갇혀서 글자만 읽어 내릴 뿐 오히려 더 좁게 볼 가능성도 있다.
세상을 넓게 보기 위해서는 글자가 아니라 세상에 대한 호기심, 세상과 자신을 연결시켜 볼 수 있는 생각의 힘이 받쳐 주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되는 게 곧바로 아이 혼자 책을 읽을 수 있게 되는 건 아니다.
처음에 아이는 온 신경을 글자를 읽어 내는 것에만 집중하게 된다. 즉 아이는 ‘글’이 아닌 ‘글자’에 집중하기 때문에 글자는 읽어 내도 글을 제대로 읽어 내진 못한다. 아이가 혼자서 책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시기는 글자가 아니라 글을 충분히 소화해 낼 수 있는 때인 것이다. 그러니 엄마들은 아이가 글자를 읽을 줄 안다고 혼자서 읽으라고 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 글을 읽다 보면 책은 점점 재미없어지고, 정작 충분히 혼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기엔 책과 멀어져 버릴 수도 있다. 무엇보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후 시기까지는 눈으로 읽는 것보다는 귀로 듣는 게 훨씬 더 잘 들어오는 때다. 듣는 데 익숙한 아이들은 다른 사람의 말을 귀담아들을 수 있게 되고, 이것이야말로 세상을 넓게 볼 수 있는 강력한 힘이다.
오진원 웹진 ‘오른발왼발’ 운영자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