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10월, 연세대 국문학과 마광수 교수가 검찰에 구속됐습니다. 그가 출간한 ‘즐거운 사라’라는 소설은 ‘사라’라는 여대생의 자유분방한 성생활을 그렸는데 검찰이 이를 음란물로 판단하여 그를 구속 기소했던 것입니다. 재판 과정에서 그는 ‘즐거운 사라’가 문학작품인 만큼 표현의 자유가 인정되어야 하며, 음란물일 수 없다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1]키워드 및 배경지식
우리 형법은 건전한 성적 풍속과 성도덕을 보호하기 위해 제243조에서 음란물을 판매한 자를, 제244조에서는 음란물을 제조한 자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음란물’이란 어떤 것일까요? 대법원은 음란물이란 ‘그 시대의 사회통념에 비추어 보통 사람의 성욕을 자극하여 성적 흥분을 유발하고 성적인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선량한 성도덕에 반하는 것’이라고 규정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헌법 제21조에서는 ‘언론·출판의 자유’를, 제22조에서는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각각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 등을 아무런 억압 없이 외부에 나타낼 수 있는 자유 즉, ‘표현의 자유’를 뜻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궁금증이 생깁니다. 만약 ‘표현의 자유’를 누려야 할 문학작품이 보통 사람의 성욕을 자극하여 성적 흥분을 유발하고 성적인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다면, 그 역시 ‘음란물’이 되는 걸까요?
[2]대법원 판결 (1995년 6월 16일)
위 사건에서 대법원은 “문학작품이라고 하여 무한정의 표현의 자유를 누리면서 어떤 성적 표현도 마음껏 할 수는 없다”면서 “건전한 성적 풍속이나 성도덕을 침해한 경우에는 형법에 의하여 처벌할 수도 있다”고 하여 마광수 교수에게 유죄 판결을 선고합니다. 이 사건 이후 소설가 장정일도 ‘내게 거짓말을 해봐’라는 소설로 재판을 받았고 역시 유죄판결이 내려졌습니다. 대법원은 문학성(예술성)과 음란성은 차원이 다른 관념이므로 문학(예술)작품에 문학성(예술성)이 있다고 하여 그 작품의 음란성까지 당연히 부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하였습니다.
[3]생각 키우기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를 유지·발전시키기 위해 보장되어야 할 가장 소중한 인권 가운데 하나입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 등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다면 ‘다양성’을 전제로 하는 민주주의는 보전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에도 분명 한계는 있어야 합니다.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심지어 욕을 하는 것까지 ‘표현의 자유’라 할 수는 없기 때문이지요. 문제는 과연 어떤 경우에 어느 정도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특히 이 사건에서처럼 작가의 자유로운 상상을 생명으로 하는 문학작품을 ‘음란성’이라는 막연한 개념으로 국가가 규제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논란이 되어왔습니다.
이제는 널리 알려진 고전이 되었지만, 미국에서도 소설가 D H 로런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라는 소설을 두고 음란성 재판이 있었습니다. 이 재판에서 브라운 판사는 소설의 성적 표현이 그 소설의 나머지 부분을 침수시킬 정도로 압도적이지 않으면 외설이라고 할 수 없다는 ‘침수 이론’을 제시하면서, ‘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외설이 아니라고 판결하였습니다. 문학작품이라 하여 음란물이 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문학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최소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음란물에 의한 폐해보다는 국가권력의 남용에 의한 폐해가 훨씬 더 컸던 것이 아닐까요?
[4]더 생각해 봅시다
대중매체의 폭력적·선정적인 장면이 청소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엄격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과 청소년들은 그런 장면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규제가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에 대해 본인의 의견을 말해보시오. (동국대 2005학년도 수시 2학기 구술 문제)
[5]TIP
임상철 인피데스 법률사무소 변호사
▶easynonsul.com에 판례 원문과 관련 논술·수능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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