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구 범어동에 있는 경신고는 학교 슬로건 자체가 ‘학력 경신’이다. 인문고인 만큼 일단 공부부터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 대입에서 경신고는 서울대에 21명이 합격해 특목고를 제외하고는 전국 1위로 주목을 받았지만 정작 학교 안에서는 “만족스럽지 않다”는 분위기다.
1966년 상업계 고교로 개교했다가 1979년 인문고로 전환한 뒤 첫 졸업생을 배출한 1982년부터 서울대에 진학한 ‘성적표’를 보면 21명은 오히려 적은 수치.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경까지는 매년 서울대에 25∼30명 입학했다. 지금까지 서울대에 들어간 졸업생은 655명에 달한다.
14일 만난 김호원(58) 교장은 “서울대 입학정원이 줄어 진학자가 오히려 감소했다”며 “서울대 입학정원과 관계없이 매년 30명 정도는 입학해야 정상”이라고 말했다.
김 교장은 1977년 이 학교 국어교사로 출발해 뛰어난 입시 성과를 거둬 2002년 교장이 됐다. 입시 지도에 관한 한 베테랑이다.
그는 당시로서는 용어조차 낯설었던 ‘수준별 이동수업’을 진학지도 교사이던 1990년부터 도입했다. 학부모 사이에는 “위화감을 조성한다”며 비난하는 목소리도 많았지만 지금은 옛날얘기.
서울대에 진학한 선배들은 방학이면 학교를 찾아 후배들에게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선후배가 ‘학력 마인드’로 뭉쳐 있다.
인문계 1회 졸업생인 손정호(44) 씨는 아들도 올해 경신고 후배로 만들었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대구에서 공인회계사로 일하는 손 씨는 “내가 다닐 때보다 학교가 더 발전한 것 같다”며 “선배들의 진학 성적이 좋아 후배들이 ‘열심히 하면 나도 되겠다’는 분위기가 정착돼 있는 것이 경신고의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김 교장이 학력을 최우선으로 하는 이유는 “학력이 되면 인성교육은 저절로 되지만 그 반대는 아니다”는 소신 때문. 그는 “착실히 공부 잘하는 것만큼 분명한 인성은 없다고 본다”고 했다.
대륜고는 경신고보다 1학급이 적게 편성돼 있다. 대륜고 옥정윤(47) 진학담당 부장교사는 “학급당 1명 이상 서울대에 진학하므로 실질적으로는 경신고에 뒤졌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최근 3년 동안 서울대에 진학한 인원은 두 학교가 59명으로 같다.
1921년 개교한 대륜고는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선후배 사이에 대단하다. 3만여 명의 동문이 후배들에게 보여 주는 애정은 지나칠 정도. 국내외에 흩어져 있는 동문들이 후배를 위해 매년 학교에 지원하는 장학금만 1억 원이 넘는다.
지난해 10월에는 “열심히 운동하면서 공부도 잘하라”는 뜻에서 3억 원을 모아 먼지 나던 운동장을 국제 규격에 준하는 잔디운동장으로 만들어 줬다.
2005년 10월에는 대륜고 출신으로 1966년 베트남전쟁에서 부하를 구하고 전사한 이인호 소령의 흉상을 설립하기도 했다.
이종익(59) 교장은 “부하를 위해 목숨을 던진 이인호 소령의 정신은 지금도 선후배의 정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민족시인 이상화 선생이 대륜에서 보수를 받지 않고 교사로 근무한 것은 지금도 교사와 학생 사이를 이어 주는 끈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두 학교 모두 학부모의 신뢰가 높은 데다 선후배와 동창이 똘똘 뭉친다는 게 공통점. 대륜고 학교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조명래(42·여) 씨는 “오랫동안 숙성된 포도주처럼 선생님과 아이들이 한결같이 스승과 제자의 모습을 잃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며 “학부모 처지에서는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대구=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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