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57주년인 25일 낮 서해 연평도 남쪽 70km 해상. 초계 임무 중이던 해군 2함대 소속 1300t급 진해함에 비상이 걸렸다. 20km 떨어진 해상에서 가상 적 함정이 아군을 향해 공격 태세를 취한 것.
함장인 박동업 중령의 명령에 따라 장병 100여 명이 각자의 임무 위치로 번개처럼 몸을 날렸다. 폭풍전야의 침묵 속에 방탄조끼를 입고 철모를 쓴 장병들의 표정에선 팽팽한 긴장감이 묻어났다.
잠시 뒤 박 중령이 “쏘기 시작” 하고 외치자 ‘콰쾅’ 하며 고막을 찢는 폭음과 함께 함수(艦首)에 탑재된 76mm 함포가 잇달아 불을 뿜었다. 적의 교전 의지를 꺾기 위한 ‘원거리 제압사격’이었다.
2002년 6월 29일 서해교전 이후 5년. 눈부신 태양과 넘실대는 푸른 물결, 갈매기 떼 가득한 연평도 앞바다는 5년 전의 ‘핏빛 비극’을 잊은 듯 평화롭기만 했다. 하지만 새까맣게 그을린 해군 장병들은 5년 전 목숨 바쳐 영해를 수호한 6명의 영웅을 결코 잊지 않겠다는 비장한 자세로 조국의 바다를 지키고 있었다.
연평도 남쪽 40km 해상에서 150t급 해군 참수리고속정으로 옮겨 타고 서해 북방한계선(NLL) 초계 임무에 동행했다. 이 고속정은 서해교전 때 북한 경비정의 기습으로 침몰한 참수리 357호와 편대를 이뤘던 358호. 조타실에는 ‘전우가 사수한 북방한계선을 우리가 지킨다’는 문구가 선명하게 붙어 있었다.
서해교전 이후 고속정은 함교(艦橋)에 두꺼운 방탄 철판을 보강하고 미사일 기만 장치를 탑재해 방호력을 높였다고 해군은 설명했다.
꽃게잡이 철이 되면 고속정 대원들은 적의 도발에 대비해 초긴장 상태에서 하루 5차례 이상 비상 출동훈련을 실시한다. 고속정 대원들은 한번 초계 임무에 투입되면 2주간 고된 해상 생활을 해야 한다. 고속정장인 이성민 대위는 “적의 어떤 도발도 즉각 응징할 수 있도록 모든 대원이 혼연일체가 돼 NLL 수호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속정은 서해 최북단의 해군 전진기지를 향해 시속 50km 이상으로 질주했다. 30여 분 뒤 고속정에서 18km 떨어진 북한 등산곶의 윤곽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등산곶은 북한 서해함대 8전대 예하 기지로 서해교전 때 도발한 북한 경비정들이 출항한 곳. 장병들은 입을 굳게 다물고 매서운 눈초리로 등산곶을 노려보았다.
이어 도착한 연평도 앞바다에선 민간 어선 5, 6척이 다른 고속정들의 통제에 따라 조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평소 NLL을 침범해 불법 조업을 하는 중국 어선은 보이지 않았다.
해상에 바지선 형태로 떠 있는 해군 전진기지는 고속정의 군수지원과 NLL을 침범한 북한 어선의 나포 임무를 수행하는 핵심 기지로 NLL에서 불과 5km 떨어져 있다.
해군 2함대 부사령관인 정호섭 준장은 “북한은 여전히 임의로 설정한 해상경계선을 고집하며 NLL 무력화에 몰두하고 있다”며 “적이 먼저 도발을 해 온다면 그 자리가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평도=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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