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을 보자. 27일 취임한 고든 브라운 총리는 중고교의 수준별 학습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싱크탱크인 경제연구회(ERC)는 학비가 싸고 작은 사립학교를 더 많이 설립해야 초중고교생의 실력을 높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 학군 내 무시험 전형이 경쟁적 교육의 쇠퇴와 사회 계층 이동의 둔화로 이어졌다는 반성이다.
입시 가이드라인 문제점 속출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유럽연합(EU) 미니 헌법을 체결한 뒤 첫 목표로 대학개혁을 내걸었다. 국립대에 재정을 지원하면서도 예산 배정과 학생 선발 등에 자율권을 주는 내용의 법안을 국무회의에 올릴 계획이다.
눈을 국내로 돌리면 답답하다.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라고 했던가. 대학에 오래 몸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대학의 내신 반영 방침을 놓고 전개되는 양상을 바라보며 느끼는 심정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발전의 핵심 에너지는 대학의 자유로운 지성에서 발원한다. 대학 주변에 모여든 지성인의 사고와 행동의 자유가 사회를 변혁하고 역사를 발전시킨 핵심 동력이었다. 한국에서도 민주화가 필요한 시절에 대학은 민주화 동력의 산실이었고, 산업화가 필요한 시절에 대학은 경제발전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의 산실이었다.
4·19혁명과 6·10항쟁 주축 세력은 대학에서의 자유를 토대로 형성돼 힘을 발휘했다. 경제성장도 대학이 자유와 자율로 키워 낸 지식과 인적자원 때문이었다. 대학은 국가의 사회 문화 정치발전의 성장 동력인데, 이 성장 동력은 자유와 자율이라는 기름을 먹어야 가동이 된다. 대학은 자유와 자율이라는 기름이 없이는 굴러가기 어려운 자동차와 같다.
한국의 대학이 지금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자유와 자율의 한계다. 대학 나름대로 설립이념과 시설, 환경 여건을 고려해 교육 효과가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되는 학생을 선발해 가르치고 싶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50여 년간 대학은 정부의 입시정책 가이드라인에 협조해 오면서 학생 선발의 자유를 자제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과 내신 그리고 면접의 세 요소를 적절하게 활용했다.
가이드라인에 따른 학생 선발은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특히 내신 위주의 선발 강요는 지난 몇 년간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켰다. 신뢰성과 변별력의 문제는 너무 심각해서 대학생 선발의 합리성과 공평성 그리고 목적성을 위태롭게 했다.
대학은 나름대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내신등급의 범위 조정을 고육책으로 제시했고, 이를 이미 몇 달 전에 학부모와 학생 그리고 고교를 향해서 공표했다. 대학의 이런 자구노력은 칭찬받을 일이 될지언정, 사회적 책임을 방기한 집단 이기주의라고 매도당할 일은 전혀 아니다. 전국 방방곡곡에 흩어진 수백 개 대학을 일사불란한 지침으로 이끌어 가려는 시도야말로 이기주의적 태도다.
정부 학생선발 간섭 자제해야
교육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간섭은 대학입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정부가 간섭하지 않으면 대학이, 아니 교육 전반이 방종하게 굴 것이라는 인식이 정부의 과도한 간섭을 합리화했다.
지금부터라도 정부의 간섭을 줄이면 대학은 좋은 입시안을 경쟁적으로 개발할 것으로 나는 믿는다. 대학은 좋은 학생을 선발할 지성과 사회적 책임감을 갖고 있다고 본다. 대학만이 아니다. 시도 교육청과 일선 학교도 마찬가지다. 민간사회의 능력과 양식과 의지를 불신하고 규제를 강화하면서 교육의 경쟁력을 기대하기는 사실상 힘들다고 본다.
문용린 서울대 교수·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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