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 알아낸 고객 정보로 카드를 복제하거나 진짜 CD에 카드 판독기를 설치해 돈을 빼낸 금융 사기와는 달리 가짜 CD를 직접 제작해 예금주의 돈을 인출한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다.
부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3일 가짜 CD로 알아낸 카드 정보로 복제카드를 만든 뒤 돈을 빼낸 혐의(특수절도 등)로 김모(31) 씨 등 2명을 구속하고 달아난 일당 6명을 수배했다.
김 씨 등은 올 2월부터 최근까지 부산 수영구 민락동 유흥가 골목과 동구 초량동 상점 앞에 가짜 CD 2대를 설치해 놓고 100여 명의 카드 정보를 빼내 7000만 원을 인출해 챙긴 혐의다.
▽진짜 같은 ‘가짜 CD’=김 씨 등이 직접 만든 CD에는 중국산 카드 판독 컴퓨터, 카메라, 소형 액정화면, 비디오가 설치됐으며 외관은 국산 중고 CD 껍데기를 사용했다. 가짜 CD 2대의 내부 장비 구입비와 제작비로는 2억 원이 들었다.
인출이 가능한 은행 안내표, 인출 명세표, 현금 출구도 있어 겉보기에는 진짜 CD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물론 CD 내부에는 현금 및 명세표 용지, 은행 전산망과 연결되는 통신망은 없었으며 가짜 CD 전원을 켜는 데 필요한 전선만 연결했다.
이 CD는 예금주가 카드를 긁고 비밀번호를 누르는 순간 액정화면에 ‘잔금 부족’ ‘사용한도 초과’라는 메시지를 뜨게 해 예금주의 발길을 돌리게 했다. 이때 카드 판독 컴퓨터와 몰래카메라가 예금주의 카드 정보와 비밀번호를 판독해 컴퓨터와 비디오에 저장했다.
이들은 이렇게 빼낸 개인정보로 전북 완주군 소재 비밀창고에 있던 카드리더기로 복제 현금카드 100장을 만들어 돈을 수시로 빼낸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가짜 CD를 설치할 수 있게 해 준 건물주나 가게 주인에게 월 10만 원의 임차료를 건넸고, 설치 과정에서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은행 직원 유니폼을 차려 입었다.
오랫동안 현금이 나오지 않으면 꼬리를 잡힐 수 있다고 판단해 가짜 2대를 부산 남천동 유흥가 골목이나 서울 양천구 목동, 경기 성남시 분당, 경남 창원 등지로 3∼5일 간격으로 옮기기도 했다.
돈을 찾는 과정 역시 치밀했다. 예금주의 개인정보를 손에 넣은 이들은 복제카드로 진짜 CD에서 돈을 찾을 때에는 변장을 한 뒤 가짜 CD에서 멀리 떨어진 곳을 이용했다. 피해 예금주들은 어디선가 예금 잔액이 빠져나간 것을 알았으나 가짜 CD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은 이들이 서울과 경기, 전남 지역에도 가짜 CD를 설치했다는 진술에 따라 피해 규모가 더 클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부산=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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