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헌법은 대학의 자율성을 기본권적 가치로 보장하고 있다. 대학이 학생을 전형 선발하는 방법까지 국가에서 정해 주고 간섭하는 일은 분명히 대학의 자치를 보장하는 헌법정신에 어긋난다.
교육인적자원부는 고등교육법과 그 시행령에 근거한 적법한 간섭이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대학의 자치권은 법률로 제한할 수 있고 관계 법령이 대학의 학생 전형 및 선발에 관해 주무 장관에게 전형기본계획 수립권을 주었다고 하더라도 장관의 권한 행사는 모든 수험생의 기본권 및 대학의 자치권과 조화될 수 있는 합리적인 내용이어야 한다는 헌법적인 제약을 받는다.
내신등급 같아도 실력 큰 차이
대입 수험생은 헌법에서 능력에 따라 균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를 보장받는다. 대학은 학생을 선발할 때 이 기본권을 존중할 의무가 있다. 해당 법령에서도 대학의 의무를 강조한다. 내신 반영 강요가 대학의 이러한 의무이행을 방해할 때 대학은 당연히 지시를 거부할 수밖에 없다.
내신의 획일적인 50% 반영 강요는 수험생의 평등권 및 능력에 따른 균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와 대학의 학생선발자율권을 동시에 침해하는 위헌적인 공권력 작용이다. 전국 고등학교의 현격한 성적 차는 엄연한 현실이다. 이를 무시하고, (아니면 이 엄연한 현실이 참여정부의 하향식 평준화교육정책에 역행하기 때문에) 모든 학교의 내신등급을 동일한 기준으로 반영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능력을 무시한, 획일적인 평등실현을 위한 교육정책이어서 헌법정신에 어긋난다.
같은 내신등급이라도 어느 학교를 다녔는가에 따라 학생의 능력에 큰 차이가 생기는데도 이러한 실질적인 능력 차를 대학의 전형 자료에 반영하지 못하게 막는 방침은 수험생의 능력을 정당하게 평가하는 일이 결코 아니다.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것은 단순한 교육의 기회 균등이 아니라 능력에 따른 교육의 기회 균등이다. 따라서 능력을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평가하는 일은 기본권 실현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사항이다. 다른 것을 같다고 의제하는 것은 평등권에 반하기 때문이다.
내신 혼란을 촉발한 주무 장관의 지시는 분명히 헌법과 법률에 의한 위임의 한계를 벗어난 일이다. 주무 장관에게 위임된 전형기본계획 수립권은 공정한 전형관리를 위해서지 하향식 평준화교육정책의 관철을 위해서가 아니다. 대입 전형기본계획을 통해 하향식 평준화교육정책의 목표를 달성하려고 하는 것은 헌법이론에서 금기시되는 일종의 형식 오용에 해당한다.
대학의 설립 목적이 국가와 인류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학술의 심오한 이론과 응용방법을 교수 연구해서 국가와 인류사회에 공헌하는 데 있다면 그에 적합한 학생을 골라 선발하는 일은 이 목적 달성의 필수적인 전제이다. 대학에 학생 선발의 자율권을 줘야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대학마다 전형선발기준을 자율적으로 달리 정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대학마다 지향하고 추구하는 교육 목표의 달성 방법이 다를 수 있어서다. 대학의 자율권은 국가의 타율적인 간섭권에 우선하는 헌법적인 권한이다. 이 영역에 대한 국가의 타율권은 어디까지나 보충적이어야 한다.
대학자율 보장한 헌법정신 위배
교육부 장관의 위헌적인 강요에 반발하면서 대학의 자율권을 지키겠다고 나서는 대학의 모습은 헌법이 보장한 비판적인 복종의 바람직한 자세이다. 국가권력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것은 민주시민의 미덕이 아니다.
지금까지 권력에 너무나도 무기력했던 우리 대학들이 이제 겨우 제자리를 찾아가려고 노력하는 터에 국민은 큰 성원을 보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교조화된 좌파이념으로부터 우리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다.
허영 명지대 초빙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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