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된 악수, 예상 밖 역풍=교육부는 일부 대학에서 시작된 반발이 전체 대학사회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교육부는 지난달 13일 연세대 이화여대 등이 내신 1∼4등급 만점 추진 방안을 밝히자 즉각 행정·재정적 제재를 내세워 대학 압박에 나섰다. 하지만 교육부가 일부 사립대의 ‘군기’를 잡기 위해 대학 자율권을 해친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15일 이례적으로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학입시 관련 장관회의를 열어 대학에 행정·재정적 제재를 하겠다고 밝히자 “내신 대응은 교육부의 손을 떠났다”는 말이 나왔다.
교육부는 현장의 실정과는 동떨어진 강경 대응으로 일관하는 바람에 총장협의회, 입학처장협의회, 교수단체에 이어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교수회 등 전체 대학과의 갈등 구도를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교육부, 청와대 눈치 보기 급급=교육부가 이날 돌연 태도를 바꿔 대학들과 대화에 나선 것은 청와대와 ‘교감’을 거친 이후 타협 쪽으로 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부 대학지원국장이 3일 청와대에 다녀온 뒤 주요 사립대 입학처장들과 간접적으로 연락해 의견을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교육부가 이날 합의문만 발표하고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은 배경을 두고 대통령이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해외에 나가 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당초 몇몇 대학의 문제로 출발한 내신 논란이 총장과 교수들이 집단행동을 통해 교육정책에 반기를 들 정도로 악화한 것은 청와대가 입시정책을 좌지우지하고 김신일 교육부총리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란 지적이 많다.
6개 사립대 입학처장이나 입학처장협의회가 타협점을 찾자는 성명을 발표했을 때 교육부는 ‘원칙 불변’만 되풀이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수험생들의 혼란과 교육정책에 대한 불신만 부추긴 김 부총리와 교육부 공무원들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학생과 학부모를 혼란스럽게 하고 교수들의 집단 반발까지 초래한 정부에 책임이 크다”고 밝혔다.
▽향후 전망은=교육부와 대교협이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로 함에 따라 일단 대학들의 반발은 다소 수그러드는 양상이지만 세부 문제에선 해결된 것이 없어 다시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
3일 연세대 교수평의회가 “정치권력에 의해 학문의 존엄성과 교권이 훼손되는 것을 규탄한다”고 성명을 발표한 데 이어 4일 고려대 교수의회도 대학의 자율성을 존중하라는 원론적 요구에 그쳤다. 다른 대학들도 일단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생각이다.
일단 주요 사립대들은 “교육부가 양보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2008학년도 입시안을 조기에 만들겠다고 밝혔다.
김영수 서강대 입학처장도 “교육부가 대학과 공식적으로 대화를 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면서 “대학도 수험생들을 위해 입시안을 빨리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선 학교의 수험생과 교사들은 안도하는 분위기다. 서울 풍문여고 3학년 박해인(18) 양은 “수험생들은 안중에도 없이 교육부와 대학이 싸워 혼란스러웠다”며 “내신 문제를 빨리 매듭지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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