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반론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도 반론보도를 청구해 기사화됐다면 해당 언론사가 반론보도를 싣는 데 할애한 지면의 사용료를 물어줘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합의13부(부장판사 조용구)는 ‘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됐던 여운환(53) 씨가 ‘불법 로비 및 수사 방해 의혹’을 제기한 동아일보 등의 보도(2001년 9월 14일∼10월 5일)에 대해 낸 반론보도 청구 소송의 파기환송심에서 여 씨에게 패소 판결했다고 12일 밝혔다.
재판부는 여 씨의 반론보도 청구 중 일부를 받아들인 1심 판결에 따라 동아일보가 2002년 2월 9일 여 씨의 반론을 싣는 데 할애한 지면과, 이번 반론보도 취소 판결을 보도하는 데 할애할 지면의 사용료 1000만 원을 동아일보 측에 물어주라고 여 씨에게 명령했다.
이번 판결은 거짓 반론에 지면 사용료를 물게 함으로써 반론제도 악용에 쐐기를 박은 사실상 첫 판결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여 씨에 관한 동아일보의 보도 내용은 모두 사실인 반면 반론보도 내용은 모두 허위”라며 “여 씨는 자신의 반론이 허위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반론보도 청구권을 행사할 정당한 이익이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반론제도는 반론 내용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확인하도록 하지 않고 있어 언론사에 거짓 반론을 게재할 위험을 감수하게 했지만, 반론보도 청구인에게 거짓말할 권리까지 준 것은 아니다”며 “거짓임을 알고도 청구한 반론보도는 헌법적 보호 밖에 있는 것이어서 당연히 배제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동아일보는 당시 ‘여 씨는 폭력조직 국제PJ파 출신으로 정치인, 경찰, 검찰, 안기부, 국세청 등 권력기관 인사들을 비호세력으로 삼아 이용호 씨를 위해 불법 로비를 하거나 이 씨와 관련한 수사를 방해했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여 씨가 낸 반론보도 청구 소송 1, 2심에서 모두 졌으나 지난해 11월 대법원은 여 씨의 반론보도를 인정한 항소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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