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보복폭행 수사는 법과 원칙이 아닌 외압과 청탁ㆍ로비가 개입할 경우 수사가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줬다는 점에서 `왜곡 수사'의 전형으로 두고두고 회자될 것으로 보인다.
전직 경찰총수의 청탁과 외압, 대기업의 로비와 회유, 경찰의 짜맞추기 수사 등이 자행되는 동안 한화와 전직 총수, 수사를 무마하려한 현직 간부들에게 법과 원칙ㆍ정의는 없었다.
◇ 법 농락한 전직 총수 = 검찰은 한화 고문인 최기문 전 경찰청장을 외압의 `핵'으로 지목했다.
최 고문은 보복폭행 사건 발생 나흘 뒤인 3월12일 한화리조트 김모 감사로부터 수사 상황을 알아봐달라는 부탁을 받고 고교 후배인 장희곤 남대문서장에게 전화했다.
최 고문의 청탁을 받은 장 서장은 현장 조사를 나가있던 강대원 과장에게 철수를 명령했다. "피해자가 신고한 것도 아니고, 고소장이 접수되지도 않았고 합의가 됐으니 수사팀을 철수하라"는 지시였다.
강 과장이 "기자가 이미 알고 있는 사안인데 문제가 안되겠냐"고 우려했지만 장서장은 일축했다.
최고문은 이튿날 광역수사대의 내사 사실을 듣고 곧바로 홍영기 서울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건을 잘 처리해달라고 부탁했다.
15일에는 한기민 서울청 형사과장에게 전화해 "고소ㆍ고발이 없는데 왜 수사하냐"고 항의한 뒤 김 회장을 잘 처리해달라고 부탁했고 같은 날 저녁 홍 청장과 저녁식사를 했다.
이 과정에서 3월19일 김승연 회장이 최고문에게 전화해 "내가 관련돼 있으니 잘좀 해달라"며 로비를 직접 부탁한 사실도 새로 드러났다.
◇ `김승연 봐주기' 짜맞추기 수사 = 최고문이 경찰 고위층에 대한 로비를 담당했다면 남대문서 수사팀에 대한 로비는 한화리조트 김 감사가 맡았다.
김 감사는 한화측에서 피해자 무마 및 경찰 로비 명목으로 5억8000만 원을 받아 피해자 무마 비용으로 6000만 원을 쓰고 맘보파 두목 오모 씨에게 남대문서 뇌물과 피해 무마 비용 등으로 2억7000만 원을 지급했다.
김 감사는 개인적으로 2억5000만 원을 쓰기도 했는데 그가 마련한 돈이 실제 남대문서 수사팀에게 전달되지는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오씨가 강과장에게 "둘째 아들을 한화에 취직시켜주고, 사직하면 평생 한화에서 부장 대우를 해주겠다고 제의하자 강 과장은 이를 받아들여 수사를 마친 후 아들의 이력서를 제출하겠다고 답변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경찰이 짜맞추기 수사로 김 회장은 빼고 경호과장 진모 씨만 처벌하려했던 정황도 확인됐다.
3월28일 광수대에서 남대문서로 첩보가 넘어오자 4월17일 한화 경호과장 진씨를 먼저 불러 김 회장은 무관하다는 내용으로 조서를 작성하고 영상녹화까지 하는 등 내사 종결 수순으로 수사를 진행했다.
남대문서는 4월24일 언론에 처음 보도되자 수사가 활발히 진행 중이었던 것처럼 꾸미려고 6건의 수사 보고서를 조작해 만들기도 했다.
검찰은 "결국 남대문서 수사팀이 한화와 긴밀히 협조하면서 김 회장이 관련 없는것처럼 사실 관계를 왜곡하려 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전했다.
◇골프 회동 문제 없었나 = 이택순 경찰청장 부부가 3월18일 한화증권 유시왕 고문 부자와 골프를 친 사실이 확인됐으나 검찰은 사건 청탁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다며 이 청장의 책임을 묻지 않았다.
유 고문이 이 청장에게 3월13일부터 5월초까지 7차례 전화 통화를 시도하고 2차례 통화를 했지만 모두 `골프 약속' 얘기만 했다는 점과 서울경찰청장부터 남대문 서장까지 인연이 닿는 모든 경찰 간부에게 로비를 시도한 최 고문이 유독 이 청장에게만 전화를 걸지 않았다는 점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광수대의 규정을 무시하고 수사를 남대문서로 떠넘긴 김학배 전 서울청 수사부장과 최 고문에게 수차례 로비를 받고 사실상 남대문서로 수사를 넘기도록 묵인한 홍영기 전 서울청장은 처벌 대상에서 제외되고 장희곤 서장 이하 수사팀 중간 간부들만 처벌됐다는 점도 과연 검찰이 냉정한 판단을 했느냐 하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디지털뉴스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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