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그 특사의 길을 따라서]<5·끝>100주년기념 무용공연

  • 입력 2007년 7월 17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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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휘무용단원들이 15일 네덜란드 헤이그 시내 로열극장에서 이준 열사의 의로운 죽음을 애도하는 공연을 하고 있다. 전통무용에 현대적 요소를 가미해 700여 객석을 가득 메운 현지인과 교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헤이그=변영욱 기자
늘휘무용단원들이 15일 네덜란드 헤이그 시내 로열극장에서 이준 열사의 의로운 죽음을 애도하는 공연을 하고 있다. 전통무용에 현대적 요소를 가미해 700여 객석을 가득 메운 현지인과 교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헤이그=변영욱 기자
멈춘 듯 흔들리는 손끝, 발레 할 때 신는 토슈즈와 비슷하면서도 색다른 품위가 있는 버선발의 움직임…. 관객은 무용단의 동작 하나하나를 숨죽여 지켜봤다.

강대국의 억압에 대한 저항, 시련을 극복하고 희망을 찾기까지 질곡과 환희의 역사가 무대에 펼쳐지자 잇따라 탄성이 터져 나왔다.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 700여 명은 1시간 반가량의 공연이 끝나자 아름다운 한국 무용이 안겨 준 감동에 기립박수를 보내며 환호했다.

100년 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순국한 이준 열사를 기리는 늘휘무용단(단장 김명숙 이화여대 무용과 교수)의 창작무용 ‘열사를 기리며’는 헤이그의 주말을 ‘한국의 밤’으로 만들었다.

공연은 15일(현지 시간) 오후 7시 10분부터 헤이그 시내 로열극장에서 펼쳐졌다. 2부로 나뉘어 진행된 공연에서는 한국 전통무용을 다양하게 볼 수 있었다.

1부는 거문고 음악이 배경인 ‘색동 너머’를 시작으로 궁중무용 ‘춘앵전’, 부산 지방 한량들의 춤인 ‘동래학춤’, 가야금 산조 춤인 ‘소천(素泉)’ 등 전통무용 네 가지로 구성됐다.

한국 전통무용에 현대적인 요소를 가미한 2부 창작무용은 한국의 음률에 젖은 관객의 마음에 더욱 깊은 울림을 선사했다.

안무는 이 열사의 이야기를 담은 시인 김정규 씨의 작품을 모티브로 했다. 죽음을 불사하고 조국의 억울한 사정을 세계에 알리려 애쓴 이 열사의 이야기가 거문고 소리를 타고 형상화됐다.

주네덜란드 한국대사관과 한인회는 레이던대와 한국인 학교 등을 통해 공연을 홍보하고 입장권을 무료로 배포했다. 현지의 관심이 많아서 객석의 70%를 네덜란드인이 채웠다.

네덜란드한국전참전용사회 사무총장인 슈루다스 예비역 대령은 “6·25전쟁 참전 후 한국을 여덟 차례 찾았고 전통무용을 볼 기회도 있었지만 현대적인 요소가 가미된 전통무용은 처음”이라며 “한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영웅의 이야기라니 더욱 감회가 깊다”고 말했다.

송상현 국제형사재판소(ICC) 재판관도 “신비로운 연주와 무용에 현지인의 호응이 대단하다”며 “수준 높은 무용에 대한 평가와 함께 헤이그 특사의 행적이 네덜란드에 더욱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될 것 같다”고 했다.

28년 전 한국에서 입양한 딸 김성옥(30) 씨와 함께 공연을 관람한 베르하프 씨는 “어려서부터 한국의 문화를 가르치려고 노력했지만 네덜란드에서 한국 전통예술을 접하기는 쉽지 않았다”며 “가족 모두에게 특별한 경험이 됐다”고 말했다.

역시 어린 시절 입양돼 의대에 다니는 곽아름(22·여) 씨도 “네덜란드에서 한국 문화 공연을 볼 기회는 5년에 한 번 정도”라며 “한국인뿐 아니라 전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수준 높은 모국의 무용을 보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특사의 자취를 따라온 청년 답사단원 50명도 객석에서 긴 여정의 감동과 교훈을 정리할 기회를 가졌다.

이들은 지난달 27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여정을 시작해 시베리아를 열차로 횡단한 뒤 헤이그에 도착했다. 선열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동안 자신도 모르는 새 훌쩍 성장한 듯하다고 입을 모았다.

기수를 맡은 안정수(19) 씨는 “시간이 흐를수록 나 자신과 국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다”며 “한국에서는 결코 할 수 없는 값진 경험을 해서 기쁘다”고 말했다.

답사단은 이날 공연을 마지막으로 활동을 정리한 뒤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이동해 17일 귀국길에 오른다.

헤이그=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헤이그 특사 특별전 덕수궁서 9월 2일까지▼

문화재청은 서울 덕수궁 중명전(사적 124호)에서 ‘대한제국 1907 헤이그 특사’ 특별전을 9월 2일까지 마련하고 있다. 중명전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곳이자 헤이그 특사 파견이 결정된 장소여서 의미가 깊다.

특별전에서는 ‘중명전과 고종 황제의 인연’ ‘을사늑약의 불법성’ ‘헤이그 특사 파견과 고종의 국권회복 노력’ 등을 주제로 유물 23점과 사진 380여 점을 선보인다.

이준 이상설 이위종 특사의 사진이 실린 1907년 8월 9일자 만국평화회의보와 고종 황제의 헤이그 특사 위임장 사본, 특사들이 묵었던 헤이그 시 더용 호텔 사진, 만국평화회담이 열렸던 헤이그 시 비넨호프 사진 등이 전시된다. 미국 선교사 아펜젤러 사진첩에 실린 1890년대 말 중명전과 1934년 잡지 ‘조선’에 실린 중명전 사진도 볼 수 있다.

중명전은 1901년 황실도서관으로 지어졌다가 1904년 경운궁(현 덕수궁) 화재 이후 고종의 편전(便殿), 외국인의 사교클럽, 유료주차장 등으로 쓰였다. 문화재청은 2009년까지 중명전을 원래대로 복원할 계획이다. 02-771-9952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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