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진 출석한 홍 씨를 전격적으로 체포한 것은 검찰이 홍 씨의 부탁을 받고 초본 발급을 의뢰한 전직 경찰간부 권오한(64·구속) 씨의 자택 등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홍 씨가 개입한 정황을 일부 확보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또 홍 씨를 비롯해 박 전 대표 캠프 측 인사나 지지자 등이 이명박 전 서울시장 본인과 가족, 친인척의 주민등록초본을 서울 시내에서만 최소한 8개 관공서에서 발급받은 사실이 이날 확인돼 파문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홍 씨, 초본 누구에게 전달했나=검찰에 출석하기 직전 홍 씨는 “권 씨에게 초본 발급을 먼저 부탁하지도 않았고, 초본을 받은 뒤 책상 안에 넣어뒀다가 1주일 뒤에 그대로 반납했다”면서 권 씨의 검찰 진술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러나 검찰은 홍 씨가 권 씨에게 초본 발급을 지시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다.
권 씨가 법무사를 아들로 둔 채모(59) 씨까지 찾아내 편법적으로 이 전 시장 친인척의 초본을 확보한 것은 그만큼 초본이 꼭 필요할 만한 사정이 있었고, 이 과정에 박 전 캠프에서 ‘상하 관계’로 활동한 홍 씨의 부탁이 있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홍 씨가 초본을 △박 캠프 측 누구에게 전달했는지 △다른 정치권 인사에게 초본을 건넸는지 등을 추가로 밝혀낸 뒤 17일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한나라당 경선 투표일(8월 19일)까지 수사를 끝내야 하는 검찰로서는 구속영장이 청구된 뒤 ‘배후’를 일부 인정한 권 씨처럼 홍 씨도 입을 열기를 기대하고 있다.
▽광범위한 초본 발급 경위 밝혀낼까=이 전 시장과 관련한 주민등록초본은 지난달 서울 시내 여러 관공서에서 집중적으로 발급됐다.
박 전 대표 지지자라고 밝힌 한나라당 당원 최모(55) 씨는 이날 본보와의 통화에서 “지난달 4일 박 전 대표 캠프가 이 전 시장의 위장전입 의혹을 입증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서울 강북구 수유6동사무소에 근무하는 중학교 동창 김모 계장에게 이 전 시장의 초본 발급을 의뢰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초본 발급에 필요한 이 전 시장의 주민등록번호는 한나라당 검증위원회에서 알게 됐다”고 했다.
김 계장은 또 “초본을 출력해 보니 이 전 시장의 것으로 확인돼 ‘이 전 시장 것 아니냐. 이러면 큰일 난다’면서 그 자리에서 파기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7일 서울 마포구 신공덕동사무소 등에서 이 전 시장의 친인척 3명의 초본이 발급됐다. 그 이후에는 변호사 사무장 출신인 박모(수배 중) 씨 의뢰로 은평구 녹번동과 서초구 방배3동에서 이 전 시장 가족 6명의 초본이 발급됐다.
그러나 이 전 시장과 관련된 초본이 이처럼 광범위하게 발급된 경위를 검찰이 밝혀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
▼초본 받은 권씨, 홍씨-김갑수씨 동시접촉?▼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캠프 외곽 조직에서 활동한 권오한(64·전직 경찰간부) 씨가 발급받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 친인척의 주민등록초본이 정말 김혁규 열린우리당 의원 쪽으로 흘러들어갔을까.
검찰은 두 초본(김 의원이 입수한 것은 초본 사본)의 발급일자가 같다는 점에서 권 씨가 발급받은 초본 복사본이 어떤 방식으로든 김 의원 쪽으로 갔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초본 사본의 존재 여부를 김 의원에게 알린 사람은 전 열린우리당 부대변인 출신인 김갑수 씨. 김 의원은 이 전 시장의 위장전입 문제를 폭로하기 하루 전인 지난달 11일 저녁 서울 모처에서 김 씨를 만나 식사를 함께했으며, 이때 처음으로 초본 사본을 봤다고 김 의원 캠프는 16일 밝혔다. 이 자리에는 김 씨 외에도 2, 3명이 더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과 김 씨가 평소 친분이 없었고, 다음 날 바로 김 의원이 의혹을 제기했던 점으로 미뤄 두 사람은 이 초본 때문에 만났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김 씨는 이 자리에서 초본 사본을 김 의원에게 건네지는 않았다.
김 의원 캠프의 한 관계자는 “다음 날 아침 김 의원의 지시로 회의가 소집됐는데 김 씨가 직접 이 전 시장 위장전입 내용이 담긴 초안을 A4용지 한 장 정도로 써 왔다. 이때 ‘자료는 있느냐’고 물으니 그때서야 초본 사본을 보여 줬다. 그러나 캠프에 제출하지는 않았고 자신이 다시 가지고 갔다”고 말했다.
권 씨가 초본을 발급받은 날짜가 지난달 7일로 김 의원이 처음 초본 사본을 본 지난달 11일과는 불과 5일밖에 차이나지 않는다는 점도 의문이다.
김 씨 말대로 ‘김 의원이 기자회견을 하기 며칠 전 아는 기자들에게서 받았다’면 이 초본은 불과 2, 3일 동안 권오한 씨, 홍윤식(박 전 대표 캠프 관계자) 씨, 기자들, 김갑수 씨, 김 의원 등 여러 단계를 거친 셈. 물리적으로 쉽지 않은 시간이다.
이 때문에 초본을 발급받은 권 씨가 홍 씨 외에도 김 씨 등 여러 사람과 동시에 접촉을 시도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김 의원 캠프는 “이미 여러 차례 밝혔지만 우리는 초본 발급 과정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관여한 적도 없다”고 밝혔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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