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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엑스맨’ 1, 2편으로 인기 상한가를 달리던 브라이언 싱어 감독.
그는 지난해 이 시리즈 3편인 ‘엑스맨-최후의 전쟁’ 감독직을 포기하고 돌연 ‘슈퍼맨 리턴즈(Superman Returns)’를 연출했습니다.
“왜 잘나가는 ‘엑스맨’을 던져버리고 ‘슈퍼맨’을 선택했느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짧게 답했습니다.
“왜냐고? 슈퍼맨이잖아!”
그만큼 슈퍼맨은 미국인들에게 절대적인 존재란 방증이겠지요.
‘슈퍼맨’(1978년)과 ‘슈퍼맨 2’(1980년)의 속편 격인 ‘슈퍼맨 리턴즈’는 지난해 미국 할리우드 최고의 화제작이었습니다. 약간 지루하긴 했지만, 엄청난 스케일과 상상력으로 관객을 압도했죠.
지구를 위기에서 구하는 슈퍼맨.
하지만 우리는 슈퍼맨을 두고 이런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슈퍼맨은 진정한 영웅일까?’》
[1] 스토리라인
고향인 클립톤 행성을 찾아 우주로 떠나갔던 슈퍼맨(브랜든 라우스). 그러나 그는 고향을 찾지 못하고 5년 만에 지구로 귀환합니다. 그 사이 감옥에서 풀려난 악당 렉스 루터(케빈 스페이시)는 지구를 발칵 뒤집어 놓을 새로운 계략을 마련합니다. 북극에 자리 잡은 슈퍼맨의 집에서 신비로운 수정을 훔쳐낸 것이죠. 루터는 부피가 무한대로 불어나는 이 수정을 바다에 던져 새로운 대륙을 만들고 아메리카 대륙을 파괴할 음모를 꾸밉니다.
한편 클락 켄트라는 이름의 기자로 신문사에 복귀한 슈퍼맨은 사랑하는 여인 로이스 레인(케이트 보즈워스)과 재회합니다. 하지만 이미 다섯 살짜리 아들 제이슨을 키우고 있는 그녀는 편집장의 조카와 약혼한 사이. 온 시내가 갑자기 정전된 사건을 취재하던 로이스는 사건의 배후에 악당 루터가 있음을 알게 되지만, 안타깝게도 아들과 함께 루터에게 붙잡힙니다.
로이스를 구하기 위해 날아간 슈퍼맨은 그녀를 구출하고 악당 루터를 혼내 줍니다. 이 과정에서 슈퍼맨은 엄청난 비밀 하나를 알게 됩니다. 로이스의 아들인 제이슨이 사실은 자신의 친아들이란 사실을 말이죠. 슈퍼맨은 아들에게 이런 말을 남깁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되고, 아버지는 아들이 된다.”
[2] 인정사정없이 비판하기
아, 멋진 대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되고, 아버지는 아들이 된다.” 이 말은 슈퍼맨의 아버지인 조엘이 또한 슈퍼맨에게 남긴 말이기도 하죠. 한마디로 ‘부전자전(父傳子傳)’이란 뜻이죠. 슈퍼맨의 몸속에 충만한 초능력이 그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듯, 다시 그 아들 제이슨에게도 자자손손 물려지리라는 얘기죠.
우리는 ‘슈퍼맨’ 속의 이런 설정을 새삼 비판적으로 뜯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구를 구원할 초능력이 세습(世襲·한 집안의 재산 신분 따위를 자손이 물려받는 일)된다? 영웅의 자격은 후천적 노력으로 성취 가능한 게 아니라,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결정된다는 얘기 아니겠습니까.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아무리 죽어라 노력을 해도 결코 수퍼맨과 같은 영웅의 지위에 오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의 자식도 대통령이 되는 이 개명천지에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가 따로 있다’니…. 얼마나 불합리한 논리인가요. 하지만 영화는 이런 반론을 가볍게 피해 갑니다. 슈퍼맨은 ‘외계인’이라는 설정을 통해서 말이죠.
슈퍼맨은 인간이 아닙니다. 크립톤 행성에서 온 외계인입니다. 그래서 그는 ‘선택’ 받은 존재이고, 천하무적이며, 중력의 법칙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늘을 마구 날아다닐 수 있는 겁니다. 영화는 슈퍼맨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외계인이라는 설정을 통해 ‘영웅은 따로 있고, 영웅은 세습되며, 평범한 사람은 절대로 영웅이 될 수 없다’는 전근대적인 이데올로기를 은연중 설파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간파해 낼 수가 있는데요. 슈퍼맨은 단순히 영웅(hero)이 아니라, 지구를 구원할 구세주(savior)에 가까운 존재라는 점입니다. 슈퍼맨의 아버지인 조엘이 아들에게 들려주는 대사를 볼까요.
“인간처럼 자랐지만 너는 그들과 다르다. 그들에겐 어둠을 밝혀 줄 빛이 필요해. 그 이유 때문에 나의 아들인 너를 그들에게 보냈다.”
그렇습니다. 슈퍼맨은 영웅을 넘어 메시아적인 존재입니다. ‘혼란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조엘이 슈퍼맨을 인간 세상에 메시아로 내려 보냈다’는 이야기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예수를 내려 보냈다’는 성경의 내용과 겹쳐집니다. 슈퍼맨이 예수에 대한 알레고리(allegory·비유)로 해석되는 건 이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3] 종횡무진 생각하기
슈퍼맨은 ‘배트맨’이나 ‘스파이더맨’과 동일한 차원의 영웅일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슈퍼맨은 ‘신의 아들’인 반면 배트맨과 스파이더맨은 ‘인간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슈퍼맨은 배트맨 및 스파이더맨과 다음 두 가지 점에서 큰 차이를 보입니다. 첫째로는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 수 있다는 점이고, 둘째로는 복면을 쓰지 않은 채 ‘생얼(맨 얼굴)’을 드러낸다는 점이죠.
태어나면서부터 구세주로 점지된 슈퍼맨과 달리 배트맨과 스파이더맨은 특별한 능력을 후천적으로 습득했습니다. 하지만 두 인물은 각기 박쥐와 거미인간으로 변하는 자신의 특별한 능력을 결코 뽐내거나 즐기지 않죠. 그들은 자신의 능력을 ‘신의 저주’로 여깁니다. 복면 뒤에 자신의 정체를 감춘 채 ‘어두운 영웅’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죠.
이런 이유에서 볼 때, “빨간 망토나 걸치고 날아다니면서 초능력을 뽐내는”(영화 속 악당 렉스 루터의 표현) 슈퍼맨보다는 자기 정체성을 둘러싼 고뇌와 번민을 거듭하는 배트맨과 스파이더맨이야말로 훨씬 인간적인 영웅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여러분, 영화 ‘슈퍼맨 리턴즈’에서 슈퍼맨은 사랑스러운 여인 로이스로부터 “세상은 이제 구세주를 원하지 않아요”라는 말을 듣고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당신은 세상이 영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나는 다 들려요. 영웅을 애타게 찾는 사람들의 절규가….”
영웅이 이끄는 사회는 위험한 사회입니다. 영웅은 언제든 독재자로 표변할 수 있으니까요. 선택받은 소수가 아니라 합리적인 시스템이 좌우하는 사회야말로 진정 자유롭고 안정적인 사회입니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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