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이슈&이슈]방학이 다가오는데…

  • 입력 2007년 7월 17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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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근하게 즐길 것인가 밀린 공부를 할 것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놀기 위해 일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노동이란 노예에게나 어울린다고 여겼다. 자유인은 충분한 휴식과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보았다. 기독교 윤리는 정반대다. ‘사람은 일하기 위해 논다’는 것이다.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 정신’을 쓴 막스 베버는 이렇게 말한다. “신께서 선물로 준 재능을 썩혀서는 안 된다.” 기독교에서 일할 수 있는데도 쉬는 것은 죄악과도 같다.

그렇다면 한번 되물어 보라. 그대는 쉬기 위해 일하는가, 일하기 위해 쉬는가? 대답에 따라 생활의 모습은 분명하게 차이 난다.

방학이 시작되는 즈음이다. 그대는 방학을 어떻게 보내려고 하는가? 쉬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모처럼 얻은 휴식을 푸근하게 즐기려 할 것이다. 일하기 위해 쉬는 사람들은 방학 때 쌓인 공부나 일들을 해치우려 할 터이다.

안타깝게도, 어떤 태도를 갖고 있건 간에 방학은 대부분 시시하게 끝나곤 한다. 일에 대한 의욕을 불태우며 시작한 방학은 작심삼일(作心三日)로 끝나기 일쑤다. 작정하고 놀아 보겠다던 이들도 별다르지 않다. 휴식도 길어지면 지겹기만 하다. 우울해지다가, 급기야 놀지도 일하지도 않는 어중간한 상태에서 방학이 끝나 버린다. 왜 그럴까?

사실 “놀기 위해 일하는가, 일하기 위해 노는가”라는 물음은 어색하다. 원래 일과 놀이는 하나기 때문이다. 농사짓고 가축을 치던 우리 조상들은 일과 놀이를 같은 곳에서 했다. 집과 마당, 근처 들판은 일터이자 생활공간이며, 놀이터이기도 했다. 지금도 도시의 노인들은 ‘소일거리’로 농사를 짓지 않는가!

반면 산업사회에서의 일과 놀이는 이뤄지는 공간부터가 다르다. 일은 사무실이나 공장에서 하지만, 쉬고 노는 곳은 따로 있다. 서류를 꾸미는 일을 ‘놀이’로 하는 사람도 없다. 일은 이제 자연스러운 일상이 아니며, 싫지만 버둥거려야 할 것이 되어 버렸다.

놀이도 마찬가지다. 생활과 동떨어진 놀이는 또 다른 일일 뿐이다. 제대로 놀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과 노력이 필요한지 떠올려 보라. 화끈한 휴일을 지낸 뒤에 맞는 피곤한 월요일은 놀이와 일이 동떨어진 우리 삶의 슬픈 자화상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멋진 방학을 보낼 수 있을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이 가장 행복하단다. 그대는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가? ‘일이 취미’, ‘취미가 일’인 사람들은 땀범벅이 되었어도 행복해한다. 나에게 그런 일이 과연 있는지 생각해 보자. 있다면 그대의 방학은 더없이 즐겁고 보람될 것이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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