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 제시문을 읽고 논제에 답하시오.
1. 제시문 (가)에 드러난 갈등의 내용을 (나)에 근거하여 분석하시오. (400자± 50)
2. 제시문 (다)의 사례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나)에 근거하여 분석한 뒤, 이에 대한 해결방안을 서술하시오. (400자± 50)
3. 제시문 (나)를 활용하여 (라)의 도표에 나타난 변화를 설명하고, (라)의 분석을 통해 드러난 문제점에 대한 해결방안을 서술하시오. (800자± 100)
■ 학생글
황민영·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 2학년
[문제1]
(가)에 드러난 남편과 아내와의 갈등을 통해 산업사회의 성별 분업의 문제점을 엿볼 수 있다. ①아내인 ‘노라’는 아내로서의, 어머니로서의 여성의 의무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에서부터 벗어나 그동안 잊고 지냈던 자신에 대한 의무를 실행하려 한다. ②그러나 아직도 전통적인 사고관과 고정관념에 묶여 있는 남편 ‘핼머’는 노라의 변화를 반대하며, 이해하지 못한다.
그동안 여성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했고, 사회에 나가 있는 여성들 또한 낮은 임금과 낮은 지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여성의 노동력은 가사일과 자녀 양육에 사용되어야만 한다고 ③믿어져 왔기에 여성은 사회에서 경제 활동을 하는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종속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아내는 ④자기 자신을 숨긴 채 남편과 자녀를 위해 희생하며 지내게 된 것이다.
[문제2]
①여태까지 여성은 주로 집안에서만 생활했었고, 이는 당연하게 여겨져 왔다. 그러나 사회가 변화해 감에 따라 재능 있는 여성들이 대거 사회로 진출하게 되었고, 낮은 지위에 있던 여성들 또한 점차 높은 지위로 올라가게 되었다. 그러나 조직에서 고위직은 남자가 차지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특히 남성들의 사고 속에 남아 있다. ②어리지만 능력 있는 여직원이 고위직까지 올라가더라도 그 조직 내에서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이것은 아직도 ③우리 사회가 남성이 대다수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남성 중심적 사회라는 것을 말해 준다. ④여성의 진출을 제한하는 사회 구조는 비능률적이며 손실이 크다. 따라서 성별에 상관없이 능력 있는 사람이 효율적으로 조직을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하려면 여성할당제와 같이 여성의 사회 참여 비율을 높여 주는 제도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⑤그러나 사회 구성원들의 사고 전환이 가장 기본적이며, 가장 중요하다.
[문제3]
①도표 1을 보면 20년 전 여성의 대졸초임 연봉이 남성의 60%였던 것에 비해 현재는 95%까지 큰 폭으로 올랐다. 그러나 도표 2를 보면 ②20년 전 남성을 16년 근무하는 데 비해 여성을 8년 근무로 남성의 50%밖에 미치지 못했다. 20년이 지났지만 여성은 여전히 남성의 55%밖에 미치지 못한다.
고용한 여성이 임신을 하면 출산 휴가를 몇 달간 줘야 하고, 또 정기적으로 생리휴가도 줘야 하기 때문에 남성보다 능률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사회에 만연해 있다. 이 때문에 여성 고용량이 남성보다 훨씬 적다. 회사를 다니다가 임신을 하게 되면 회사를 그만두게 되는 것이 ③현재 사회에서 통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따라서 이미 사회에 진출해 있는 여성들이 아이 가지는 것을 기피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와 ④사회의 다른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나 출산율이 점차 저하되다가 결국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하게 되었다. ⑤저출산은 사회에 많은 문제들을 야기시킨다.
노인들을 부양할 청년의 수가 줄어들어 감에 따라 고령화사회가 되어간다. 젊은 계층은 노인 부양을 위해 세금을 많이 내야 하고, 생산직을 운영해 갈 젊은이가 부족해져 국가 경쟁력이 약화된다. 자연 자원이 풍부하지 못한 한국에서 인적 자원이 줄어든다는 것 또한 국가 경쟁력 약화와도 관련된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회사 내에 탁아소를 설치하는 등 선진국들이 행하고 있는 여성을 위한 복지 시스템을 보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아이를 가진, 일하는 여성을 최대한으로 배려하며 출산율도 높이기 위해 정부가 나서서 도와야 한다. 또한 여성이 남성만큼 오랫동안 근무하기 위해서는 성별을 따지는 기존의 관습에서 벗어나야 하며 여성 또한 사회 변화에 맞추어 자기를 변화시키고 계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 첨삭지도
제시문 이해력-활용 적절하나 구체성 떨어져
【문제1】 요구사항에 따르면 제시문 (나)를 근거로 분석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제시문 (가)에서 보이는 갈등의 내용을 제시문 (나)에 소개된 ‘성별분업’의 이론을 적용하여 분석한 뒤, 이를 제시문 (나)에 나오는 개념어를 활용하여 기술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학생의 글은 이러한 고려가 부족하다.
▶①구체성이 다소 떨어진다. 그리고 요구사항에 따라 제시문 (나)에 제시된 ‘가사노동자’, ‘자녀양육자’, ‘종속적 위치’ 등의 개념어를 통해 제시문 (가)를 요약하는 것이 적절하다. ②전통적인 사고관과 고정관념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필요하다.
③제시문 (나)에 따르면 이는 이데올로기적으로 강화됨을 설명하는 것이다. 제시문 (나)에 나오는 개념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야 할 것이다. ④구체적으로 표현할 것. ‘여성이 가정 내에서 가사노동자, 자녀양육자로서의 종속적 위치에 머무른다는 것이다.’ 라는 식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적절하다.
【문제2】 제시문의 이해력과 활용은 적절하나 전반적으로 산만하다. 우선, 글의 틀을 문제의 요구사항에 순차적으로 조응시켜 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제시문 (나)의 활용을 명기하며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제시문 (다)에 드러난 문제점에 대한 분석을 (나)에 소개된 이론의 어느 측면과 결부되었는지를 (나)의 개념어를 이용해 조목조목 설명하는 내밀함이 필요하다.
▶①제시문 (다)에 드러난 문제점을 간략하게 서술하는 것이 적절하다. 성차별적 조직문화와 의식에 대한 간략한 언급이 적절하다. ②‘제시문 (다)는 ∼ 보여 주고 있다’라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③부자연스러운 문장이다. ‘우리 사회에서 남성이 사회조직 전반에서 상위직급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이다’라는 식의 표현이 적절하다.
④왜 그러한지를 간략하나마 소개하는 것이 적절하다. ⑤다소 어색한 표현이다. ‘그리고 이에 못지않게 성차별적인 의식을 타파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적절하다.
【문제 3】 통계자료에 대한 분석이 치밀하지 못하다. 통계자료를 통해 유의미한 통계치를 추출하여 그 의미를 분석해 내는 것이 관건인데, 이에 부족함이 있다. 그리고 문제에서 제시문 (나)의 활용을 요구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활용이 없다. 또한 성차별적 조직문화와 사회구조에 따른 결과물 중의 하나인 저출산에 대한 설명은 글의 분량에 비하여 과도하다.
문제가 요구하는 바를 명확히 파악하여 글을 구성하는 치밀함이 필요하다. 그리고 대안의 제시에 차별성이 필요하다. 일상적으로 인용되는 사례, 진부한 사례보다는 참신한 대안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①단순히 수치 변화 정도만 기술하였지 그것이 의미하는 바에 대한 기술이 없다. 임금 측면에서 성차별은 거의 소멸되었음을 설명하여야 적절하다. 그리고 제시문 (나)를 활용할 것을 문제에서 요구하므로 (나)에서 소개하고 있는 이론과 소개된 개념어를 이용하여 설명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②우선 비문이다. 그리고 근속연수라는 개념을 통하여 문장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수치 변화의 의미를 간략하게나마 기술한 뒤 다음 문장을 이어 나가야 자연스럽다. ③‘일부 회사에서는 관행으로 여겨지고 있다.’라고 기술하는 것이 객관적이다. ④간략하게나마 소개하는 것이 적절하다. ⑤저출산에 따른 문제의식과 이에 대한 분석은 논의 전개상 간략하게 소개하는 것이 적절하다. 온존하고 있는 성차별적 조직문화와 사회구조와 인식에 대한 문제제기와 대안의 도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논제 분석▼
이번 논제는 2008학년도 논술을 대비하는 측면에서 연세대 유형을 출제하였다. 대학 측은 다면사고형 문제 출제를 위해 제시문과 문항에 통계자료를 반영할 가능성이 있음을 밝혔고, 실제 모의논술에 이를 반영하였다. 따라서 연세대 논술 또는 연세대형 논제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은 이번 논제를 통하여 통계자료에 대한 해석의 기본 틀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문제 1】 의 요구 사항은 두 가지이다. 먼저 제시문 (나)의 요약이 필요하다. 성별분업을 가정과 사회적 측면에서 정리하고 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 다음에는 제시문 (가)에서 보이는 갈등의 내용을 제시문 (나)의 설명에 조응하여 설명하여야 한다. 갈등의 장이 어디인지를 감안한다면 그리 어려운 요구사항은 아니다.
【문제 2】 의 요구사항은 두 가지이다. 먼저 제시문 (다)의 사례에서 드러난 문제점에 대한 요약과 분석이 필요하다. 이때 성차별을 둘러싼 갈등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분석해 내는 것이 핵심이며 이를 요구사항에 따라 제시문 (나)에 제시된 분류와 개념어를 이용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해결방안은 의식적 측면과 제도적 측면으로 분류하여 제시하는 것이 적절하다.
【문제 3】 의 핵심은 제시문 (라)의 표 분석이다. 제시문으로 채택된 도표는 논제와 부합되는 것이므로 제시문 간의 연관관계를 감안하여 분석하여야 한다. 유의미한 통계치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관건이다. 특히 시계열의 분석은 수치의 변화 정도에 주안점을 두는 것이 핵심이므로 이를 통해 표 해석의 방향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제시문 분석▼
(가) 노르웨이의 극작가인 헨리크 입센(Henrick Ibsen)의 ‘인형의 집’이다. 남편과 아이를 두고 집을 뛰쳐나가기로 결정하는 노라와 남편인 헬머의 언쟁이 제시되어 있다. 헬머는 가사와 양육은 기혼여성의 의무라며 그것에 따를 것을 노라에게 종용하고 있다.
반면 노라는 그러한 생각이 세간의 통념이며 표준이지만 이를 거부할 것이며 자유의지로서 자신의 인생을 꾸려나가겠다고 선언한다.
(나) 성별분업에 대한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주장을 요약한 것으로 대다수 페미니스트들이 수용하는 견해이기도 하다. 제시문에 따르면 성별분업체계로 인해 남성은 생산의 담당자이며 생계 부양자, 여성은 가사의 전담자이며 생계피부양자로 규정된다.
그리고 여성은 남성에 비해 낮은 지위에서 낮은 임금을 받는 직업에 위치지워짐으로써 남성으로부터 경제적으로 종속되고 또 한편으로는 자본가로부터 고도로 착취당하는 부차적인 노동자로 규정된다.
(다) 여성의 중간 관리직 진출은 급증했으나 이것이 조직 내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는 설명이다. 소개된 사례들은 우리 사회의 여전한 성차별적 조직문화와 의식을 보여 주고 있으며, 조직 차원에서 마련된 갈등의 해결책이 상담관리나 인사조치 등의 개별적이고 사후적인 조치이고 경제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한계를 갖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라) 표 ‘Ⅰ. 남녀행원 대졸초임 평균연봉 추이’의 경우, 과거 30여 년 동안 남녀행원 간의 임금격차가 현격하게 좁혀졌음을 알 수 있다. 적어도 은행업계에서는 임금 측면에서는 성차별이 거의 소멸했음을 알 수 있다.
이양기 학림논술연구소 노원팀장
■ 다음 주 논제
돈-실용성에 사로잡힌 학문풍조
※ 다음 제시문을 읽고 문제에 답하시오.
1. 아래 도표는 A국가의 연도별 대학 학부과정의 재학생 현황에 관한 것이다. <제시문1>과 <제시문2>에 의거해서 아래의 도표에 나타난 변화를 설명하고, 두 제시문의 논점의 차이를 지적해 보시오.(800자 내외)
2. 모든 제시문을 활용하되 인문학이 위기라는 문제에 대해 서로 다른 주장을 담고 있는 제시문들을 대비하면서 ‘인문학은 정말 위기에 처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시오.(800자 내외)
<1> 근대 인문학은 과학에 눌려 변방으로 밀려납니다. 그게 문제입니다. 갈릴레오에서 시작되는 근대 과학의 방법이 인문학을 압도하고, 데카르트의 근대 철학이 그 방법을 옹호합니다. 실증주의 철학도 그 연장선상에 있죠. 인문학 영역인 철학이 근대 시기에 오히려 인문학 전통을 내리누르는 데 기여했다는 것은 아이러니입니다. 그러니까 지성사의 맥락에서 보면 인문학과 과학이 완전히 별개의 문화인 것처럼 갈라서게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근대 300년의 결과예요. CP 스노가 말한 ‘두 개의 문화’도 인문학과 과학의 그런 분리를 지칭한 겁니다.(중략)
당장 시장에 내다 팔 기술, 돈 버는 데 도움이 될 기술만 대단하게 여기는 것이 우리 사회죠. 복제기술의 시장가치는 뭐고 무슨 기술적 우위를 차지하느냐, 생명공학기술(BT)이 정보기술(IT)에 이어 21세기 시장을 지배할 ‘다음번 대박’이라는데 우리도 그 대박을 놓칠 수 없다는 거죠. 학문에 대한 우리 사회의 매혹은 시장가치, 돈, 실용성의 요구에 사로잡혀 있어요. 그 결과 시장에서의 실용성의 요구를 상대적으로 충족시키기 어려웠던 인문학은 위기를 맞게 되었다고 볼 수 있어요.
<2>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떠돈다. 하지만 그 실상을 보면 허탈함을 느끼게 된다. 물론 그 위기가 외적인 원인에 의해 가속화된다면 문제가 있지만 내재적인 원인을 성찰하지 않고 그 문제의 본질을 볼 수는 없다. 인문학의 위기란 무엇인가? 그 한 측면은 인문학이라는 학문 자체의 위기이며, 다른 한 측면은 인문학을 하는 사람들 및 교육제도 내에서의 인문학의 위상에 불어 닥친 위기이다. 인문학은 그 자체가 위기에 빠졌는가?
오늘날 ‘인문학의 위기’가 있다면 그것은 취업이 잘 안 되는 학생들의 위기요, 학부제 실시 이후 우왕좌왕하는 대학행정의 위기일 뿐이다. 즉 오늘날의 위기는 어디까지나 학문 외적인 위기인 것이다. 인문학의 위기를 운운한다는 것은 순수 학문의 문제가 아니라 밥벌이의 문제일 뿐이다. 사람들은 보다 나은 이름 자리를 따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청소년들은 더 좋은 이름 자리를 따기 위해 공부한다. 대학이 더는 순수한 공간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상품논리에 의해 장악되어버린 오늘날, 전공의 문제는 이제 ‘관심’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를 포기하지 않는 한 논리적으로 인문학의 위기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위기를 운운하는 것은 인간이 바로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회의하고 있음을 말하며, 이것은 곧 그가 사유하고 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함에도 끝없이 나아가야 하는 것 또한 인간의 운명일 것이다.
<3> 인문학의 위태로움을 탄식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학생들이 사학과나 철학과를 회피하고 인문학 서적들이 팔리지 않아 재고만 쌓이는 현실이기에 당연한 걱정이라 하겠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국가의 과제가 ‘민족’보다는 자신을 ‘좋은 상품’으로 만들어 팔 줄 아는 인간의 대량생산이니, 전통적 의미의 ‘국민적 인문학’은 뒷전으로 밀리게 됐다. ‘돈 안 되는 학문’이 연구비 분배의 주된 주체인 정부나 기업화돼 가는 대학들의 푸대접을 받고 쇠퇴하는 것은 위기의 외재적 원인이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과연 오늘날과 같이 틀에 박힌 인문학이 자신의 위기를 자초한 부분이 있지는 않은가? 지금 자본과 국가가 인문학의 목을 졸라 질식사시키는 것이 사실이지만, 자본주의 국가가 생산한 인문학은 자본과 국가의 공격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구미 지역에서 근대 대학 제도의 형성과 함께 20세기 초반에 그 틀이 완성되고, 그 뒤에 한국으로 이식된 아카데미즘(순수학술) 인문학에는 ‘전공’끼리의 정밀한 구별과 연구자들의 극단적인 전문화라는 특징이 존재한다.(중략)
이와 같은 미시적인 분야 나누기는 공부의 깊이에서 장점도 많지만 결국 사회와 소통할 수 없는, 지식 생산의 ‘라인’에서 한 나사만 돌릴 줄 아는 ‘전공자’를 만듦으로써 자본과 국가 앞에서 지식인을 무력화시키게 된다. 그러나 ‘국사’ 전반 중에서도 하나의 인물, 하나의 기간, 한 가지 비문이나 문헌만 ‘전문 연구’하는 사람은 신자유주의적 국가를 이념적으로 분석, 비판할 수 있는 확률이 훨씬 낮다. 신자유주의에 맞서 있는 광범위한 피해대중의 처지에서라면 그러한 종류의 인문학이 관심의 대상이 될 리 없다. 이러한 내재적 원인이야말로 어쩌면 인문학 위기의 본질적인 문제가 아닌가.
<4> 사실 인문학의 주된 영역인 문학, 역사, 철학은 사회와 문화의 모든 영역을 대상으로 합니다. 직접 인간사회의 실제 생활을 포괄하는 문학이야 말할 것도 없습니다만, 역사도 정치사, 사회사, 경제사만이 아니라 사상, 종교, 예술, 과학, 기술, 법 등 모든 영역을 대상으로 합니다.(중략)
이와 관련해서 저는 우리나라에 특히 심한 문과 이과 구분의 폐단을 심각하게 느낍니다. 문과에 속하는 사람들이 오늘날 사회와 문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과학과 기술에 대해 지니는 편견과 무지가 심각합니다. 물론 그 반대 방향의 편견과 무지, 즉 과학기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인간과 사회 문제에 대한 무지와 편견도 심각하고 만약 이 자리가 이공대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면 그 같은 편견과 무지에 대해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과학, 기술에 대한 그 같은 편견에 빠지지 말고 적극적으로 그것들을 이해하려는 태도를 지니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여러분의 인문학은 오늘날 사회 문화의 커다랗고 중요한 부분을 포함하지 못하는 좁은 범주에 갇히고 말게 될 것입니다.
인문학은 과연 위기에 처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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