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보는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는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알 수 없습니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아저씨가 천사같이 고운 마음씨를 갖고 있을 수도 있고, 예쁜 옷을 입은 상냥한 아가씨가 유괴범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흔히들 사람의 겉모습이 아니라 실제 행동을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당연하게 들리는 이 말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사람의 행동을 보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확실히 알 수 있을까요? 글쎄요, 그런 것 같지도 않습니다. 똑같은 행동을 보고도 누구는 좋다고 하고 누구는 나쁘다고 하니까요.
우리나라 대통령을 예로 들어 볼까요. 우리나라 국민 중에 대통령이 어떤 말과 행동을 해 왔는지 모르는 국민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대통령의 언행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니 같은 행동을 보고도 생각이 다른 거지요. 좋고 나쁨을 구분하는 일은 그래서 생각처럼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황금빛 붉은 태양이 푸른 바다에서 올라오는 것일까요? 그렇지만 태양은 푸른 하늘에서 내려오기도 하잖아요? 나는 바다와 하늘을 구분하지 못하겠어요. 또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도 구분하지 못하겠고요.”
이 말은 ‘우리는 바다를 보러 간다’라는 중국 동화책에 나오는 주인공 잉쯔의 말입니다. 잉쯔는 초등학교 1학년 여자 아이랍니다. 그리고 잉쯔의 말을 듣고 있는 사람은 잉쯔가 마을 어귀에서 우연히 만난 낯선 아저씨입니다.
잉쯔는 모르고 있지만, 실은 그 아저씨는 도둑이랍니다. 마을을 돌아다니며 값비싼 물건을 여러 차례 훔쳤고, 그래서 경찰이 뒤쫓고 있는 사람이지요. 사람 행동만 보고 판단한다면, 이 아저씨는 분명 나쁜 사람입니다.
그런데 한번 다 같이 생각해 봅시다. 혹시 나쁜 행동을 저질렀지만 좋은 사람인 경우는 없을까요?
잉쯔가 차차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저씨는 잉쯔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나이 어린 6학년짜리 남동생이 있습니다. 동생은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은 아주 뛰어난 학생이랍니다. 품은 뜻도 커서, 학교를 졸업하면 바다 건너 외국으로 유학을 가고 싶어 하지요. 그러나 아저씨는 직업도 없고 무척 가난합니다. 형이 동생을 위해 해줄 게 아무것도 없는 거지요. 아저씨가 왜 도둑이 되었는지 짐작이 가나요? 아저씨는 동생의 유학을 돕기 위해 도둑질에 나선 겁니다. 그러니 좋은 마음으로 나쁜 행동을 한 거지요.
알고 보면 세상에는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납니다. 안중근 의사를 생각해 보세요. 안중근 의사는 일제의 지도자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했습니다. 분명히 살인을 했지만, 그 행동은 나라를 구하기 위한 좋은 마음에서 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의로운’ 일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겁니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은 사람 생김새만 봐서도, 또 행동만 봐서도 잘 모릅니다. 이 세상에는 좋은 사람이 나쁜 행동을 하거나 나쁜 사람이 좋은 행동을 할 때도 자주 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을 무슨 수로 볼 수 있을까요? 마음은 눈에 보이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니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을 구분하기란 그 누구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랍니다.
우리는 결국 잉쯔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잉쯔는 아저씨가 경찰에 붙잡혀 가는 걸 보면서도 결코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답니다. 잉쯔는 그래서 더욱 바다를 보러 가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바다와 하늘이 수평선에서 만나면 어디가 바다이고 어디가 하늘인지 구분하기 어렵잖아요? 이처럼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은 어느 누구도 확실히 구분할 수 없는 것 아닐까요?
김우철 한우리 독서논술 연구소 실장
※ 린하이윈, ‘우리는 바다를 보러 간다’(베틀북·2001년)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