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대한 미국 비자면제프로그램(VWP·Visa Waiver Program)의 시행이 사실상 확정됐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지난달 말 상하원을 각각 통과한 ‘9·11위원회 권고사항 이행법안’에 3일 서명했기 때문에 법적 절차가 마무리됐다. 이 법안은 기존에 유럽 일본 등 27개국에 적용되던 VWP를 확대하고 요건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돼 있다. 새 비자면제프로그램의 구체적 내용을 일문일답으로 알아본다.》
Q. 내년 7월부터라는 시행 시기는 확정됐나.
A. 날짜가 명시된 건 아니지만 법이 요구하는 준비사항만 충족되면 바로 시행된다. 한국 측이 준비해야 하는 것은 전자여권제도의 시행이다. 내년 7월부터는 전자여권을 발급한다는 게 한국 정부의 시간표다. 미국은 전자여행허가(ETA·Electronic Travel Authority) 시스템 및 출국자 통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또 양국 간에 여행자에 관해 어떤 정보를 교환할지 기술협정을 맺어야 하는데 지난달 서울에서 1차 협상을 했다. 현 추세면 양측이 모두 계획대로 준비를 마치는 것을 가정해 내년 7월 이후부터 비자면제가 시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Q. 그때부터는 누구나 미국에 비자 없이 갈 수 있나.
A. 관광이나 사업 목적 방문 시 비자가 필요 없다. 단 체류기간은 90일로 한정된다. 현재의 여권 대신 컴퓨터칩과 디지털 사진이 내장된 전자여권을 갖고 있어야 한다. 유학, 취업, 이민 등을 위해선 기존처럼 비자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비자면제제도가 시행되어도 미국 입국이 거부되는 사람은 여전히 나올 것이란 점이다.
Q. 왜 그런가.
A. ETA제도 때문이다. 이는 미국행 비행기표를 살 때 적용된다. 표 구매 신청 때 제출한 이름 생년월일 등 신상정보를 토대로 미 국토안보부가 미국 입국을 허가할지를 전산상으로 심사해 즉각 결정한다. 구체적 기준은 앞으로 만들어진다. 현재 명백한 이유로 비자가 거부된 사람, 즉 불법체류나 범죄 경력이 있는 등 비자 발급을 거부하는 기준에 해당되는 사람은 앞으로는 비행기표를 사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다. 그리고 비자 면제는 항공기편으로 미국에 입국하는 경우에만 해당된다. 육로나 선박으로 입국하려면 비자가 필요하다.
Q. ETA제도는 이번에 새로 실시되는 것인가.
A. 그렇다. 전 세계적으로 호주가 이 제도를 시행 중인데 미국도 이번에 도입했다. 유럽 일본 등 기존 비자면제국 27개국 국민에 대해서도 ETA가 적용된다. 유럽인들 가운데도 테러용의자가 있는데 현행 제도에선 아무런 심사 없이 미국 입국이 허용되기 때문에 심사를 강화한 측면이 있다.
Q. 그럼 현재보다 편해지는 게 대체 뭔가.
A. 현행 비자제도하에서 통계상 한국의 경우 100명 중 96명은 비자를 신청하면 비자를 받는다. 이런 사람들이 혜택의 주된 계층이다. 어차피 비자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대사관에 줄을 서서 비자 심사를 받을 필요 없이 비행기표 구매 과정에서의 전산상 심사만으로 기존의 비자 절차를 대신할 수 있다.
Q. 현재는 관광·사업 비자를 받으면 180일까지 체류할 수 있는데 90일로 짧아지면 더 불편해지는 것 아닌가.
A. 90일 이상 체류하고 싶은 사람은 현재처럼 비자를 신청하면 된다.
Q. 미국 체류기간이 90일이 되기 전에 잠시 캐나다, 멕시코 등으로 나갔다 오면 다시 90일 산정이 시작되나.
A. 그렇지 않다. 캐나다, 멕시코, 카리브연안국 여행은 미국 내 여행으로 간주한다.
Q. 기존엔 관광비자로 미국에 간 뒤 학생·취업 비자로 바꾸는 경우가 있었는데….
A. 무비자로 입국하면 체류자격 변경이나 연장이 안 된다. 반드시 90일 이내에 출국해야 한다. 한번 체류기간을 어기면 영영 재입국이 불가능해진다.
Q. 전자여권제도가 내년에 시행되면 현재 비자가 있는 사람도 다 바꿔야 하나.
A. 아니다. 기존 비자가 있는 여권을 그대로 사용해도 된다.
Q. 불법체류자가 늘어날 것이란 전망도 나오는데….
A. 비자 발급 심사를 ETA제도로 대체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재와 큰 차이는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기존에 비자를 받지 못했던 비자 신청자 중 4%의 사람들이 무비자 시대가 된다 해서 무조건 입국이 가능해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도 관광비자로 미국에 가 눌러 앉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불법체류자가 늘어나면 비자면제 대상국에서 제외될 수도 있다. 아르헨티나가 그런 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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