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같은 본능을 유전자에 새기지 못하는 동물은 종족 유지에 실패한다. 반면 유전자에 한 번 새겨지면 그것이 꼭 유리하지 않은 결과를 불러와도 그대로 작동한다. 새들은 ‘네 둥지에 삐악거리는 작은 것들이 있으면 그들의 붉은 입속에 먹이를 넣어 주라’는 유전자의 지시에 따른다. 이는 가끔 엉뚱한 결과를 낳아 종달새나 때까치는 둥지에 든 뻐꾸기 알을 품고 키우느라 제 새끼를 다 죽이기도 한다.
▽사람도 ‘진화의 실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600만 년 이상 식량 부족에 시달려 온 우리 조상들은 기회만 되면 충분히 먹고 영양분을 몸에 저장하도록 진화했다. 영양 과잉에 대비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계급 분화가 진행되면서 지배층 일부가 비만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현대사회에 들어서는 비만이 사회적 질병이 됐다. 진화생물학자들은 우리에게 과잉 영양 섭취를 예방하는 유전자가 없는 것은 진화의 속도가 생활 조건의 급격한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 ‘진화의 지체(遲滯)’라고 본다.
▽진화적 실수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성욕의 진화적 목적이 번식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식 낳지 못할 섹스를 곧잘 한다. 아기에 대한 사랑과 관심은 분명 유전자 전달에 필요해 생겨난 본능이지만, 때때로 자신과 아무런 유전적 관련이 없는 아기를 입양하도록 사람들을 부추기기도 한다. 최근 방송인 허수경 씨가 자신이 배우자 없이 정자은행에 기증된 정자로 임신한 ‘미스 맘’이라고 밝혔다. 법률적 종교적 논란도 있지만 진화론적으로만 따진다면 미스 맘 쪽이 입양보다는 유전자 전달 본능에 충실한 선택인 것 같다. 이는 또 ‘여성의 경제적 자립’이라는 사회적 진화가 가져온 부산물이기도 하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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