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이건 포목흔(布目痕)이잖아!” 16일 중국 지린(吉林) 성 지안(集安) 시. 누군가 고구려산성인 환도산성의 병사 거주지 터를 유심히 살피다 고구려 특유의 붉은 기와 조각을 발견하고 탄성을 질렀다. “포목흔이 뭐예요?”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그가 조각에 조밀하게 세로로 난 흔적을 보여 준다. “기와를 만들 때 틀에서 잘 떨어지게 하려고 기와에 삼베를 씌우면서 생긴 흔적이야.” 능숙하게 설명하는 모습이 고고학자 못지않다. 하지만 그는 올해 성균관대에 입학한 강민경(19·한문교육과) 씨다. 강 씨는 5월 치른 2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국사편찬위원회 주최·동아일보사 후원·교학사 시행) 2급 응시자 중 가장 높은 성적을 얻었다.》
강 씨와 같은, 제2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등급별 성적우수자 학생과 학부모, 교사 30여 명이 14∼18일 중국 지안, 단둥(丹東) 시 일대 고구려 유적지와 백두산, 압록강을 답사했다.
이번 시험에서 신설된 가족상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한 최하림(48) 씨 가족부터 대학수학능력시험이 100일도 채 남지 않은 최우석(18·순심고 3년) 군까지 탐방단의 면면은 다양했다.
지안 시는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 국내성이 있었던 곳. 이곳에 무려 1만2000기의 고구려 무덤이 있다는 설명에 탐방단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신재민(15·경운중 3년) 군은 “역사상 우리 민족이 가장 강했던 시기인 고구려 역사의 중심에 와 있다니 설렌다”고 말했다. “고구려 수막새(처마 끝에 놓는 둥근 모양의 기와)를 꼭 찾아 집에 전시하고 싶어요!” 최재혁(14·광동중 2년) 군도 기대를 감추지 못했다.
막상 모습을 드러낸 벽화는 중국 정부의 허술한 관리 탓에 탐방단을 안타깝게 했다. 무덤 안팎의 온도 차로 생긴 큼지막한 물방울이 천장 벽화에서 탐방단 머리 위로 쉴 새 없이 떨어졌다. 벽화 곳곳엔 목욕탕처럼 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사신도 중 현무도는 무엇이 거북이고 뱀인지 구분하기조차 힘들었다.
무덤 관리자는 관광객이 많이 드나들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김정옥(이천시 교육청) 장학사는 “명(明) 황제 13명의 능묘군인 베이징 명십삼릉(明十三陵)도 지하에 널방이 있지만 제습장치가 잘돼 있어 물방울을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광개토태왕릉은 돌이 무너져 내리고 있지만 무덤 이곳저곳을 밟고 다녀도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 “할아버지 무덤을 밟지 않으면서 조상의 무덤을 함부로 밟게 놔두는 것을 이해할 수 없어요.” 이동호(12·포항제철서초 6년) 군의 지적이 따가웠다.
최우석 군은 “오랫동안 방치한 중국 정부도 문제지만 우리 정부의 소극적 대응도 아쉽다”고 말했다. 김학춘(16·곤지중 3년) 군은 “고구려 유적을 우리 민족만의 유산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생각하고 보존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랴오닝(遼寧) 성 단둥 시에선 중국의 역사 왜곡 현장을 만날 수 있었다. 이곳 호산산성은 고구려산성의 전형적 우물이 발견돼 학계가 고구려의 박장성으로 보는 곳. 그러나 1990년대 중국이 성을 복원하면서 만리장성의 동쪽 끝으로 둔갑시켰다. 학부모 어문정(42·여) 씨는 “역사에 관심 갖는 자녀들의 꿈과 싹을 꺾지 않고 북돋워 주려면 부모도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며 “이번처럼 가족이 함께 역사 유적을 답사할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중국 지안·단둥·백두산=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국사편찬위원회가 우리 역사에 대한 국민의 이해도를 평가하고 균형 잡힌 역사의식을 확산시키기 위해 지난해 11월부터 시작한 시험. 동아일보사가 후원한다. 올해 5월 치른 2회 시험은 1회 시험에 비해 1만2338명 늘어난 2만7738명이 응시했다. 6개월 만에 응시생이 80% 급증해 한국사 바로알기 열풍을 주도하고 있다. 등급은 초등학생 대상의 초급(5∼6급), 중고등학생 대상의 중급(3∼4급), 대학생 이상 일반인 대상의 고급(1∼2급)으로 나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