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질문을 해 보자. 왜 모두 대학에 진학하려 하는가. 학문에 대한 순수한 욕구 때문일 수도 있다. 분명 그런 열정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다. 상당수가 ‘먹고 살기 위해서’라고 답할 것이다. 대학은 학문을 하는 곳이 아니라, 사회에 나가기 위한 자격증을 주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최근 학력 중심 사회의 문제점이 우리 사회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 유명인의 허위 학력(학력 위조)이 문제시되기 시작한 것이다. 학력 위조는 사회 구성원들 간의 신뢰 체계를 허물어뜨릴 만한 요인이라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다. 비록 당사자들은 여러 변명을 하겠지만 불법적인 행위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속여서라도 학력을 인정받아야 살 수 있는 사회라면, 이것도 반드시 고쳐야 할 심각한 문제다.
이런 문제들을 바라보다 갑자기 조선시대가 떠올랐다. 조선왕조의 양반을 중심으로 한 신분체제에서는 소수의 양반층이 지배세력의 중심이었다. 대부분이 농민인 절대 다수의 평민층은 피지배계층으로서 생산을 담당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접어들면서 이 체제는 요동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신분 상승과 신분 해방이 지고의 목표였기 때문에 어떠한 방법을 써서라도 신분 상승을 해 보려는 사람이 많았다. 신분 상승은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는 것뿐만 아니라, 경제적 수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평민은 양반으로, 천민은 평민으로 각각 신분 상승을 하려 했다. 이런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납속책, 공명첩 등의 합법적 방법이나, 몰락 양반의 족보를 구입하여 자신의 집안을 끼워 넣는 모속 등의 비합법적 방법 등이 동원됐다. 결국 <표4>의 자료와 같이 양반은 갈수록 늘어나고 평민과 노비는 줄어들면서 전통적 신분체제는 크게 흔들리게 되었다.
이는 마치 현대 학벌중심 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다. 남의 족보를 돈 주고 사서라도 양반이 되어야 했던 사회, 위조해서라도 대학·대학원의 졸업장이 필요한 사회. 파당과 학벌. 그 이유와 목적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뭔가 굉장히 유사하다.
학력 위조를 막기 위해, 그리고 우리 사회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학력(學歷)이 정확하게 기재되었는지 따져봐야 한다. 그리나 더 중요한 것은 학력(學力)을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졸업장이 있다고 실력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 더 나아가 학력(學歷)이 없더라도 실력이 있는 사람을 우대할 줄 아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적당한 돈과 적당한 시간을 들여 대학 졸업장이라는 자격증을 따길 원하지, 모든 시간과 온몸을 바쳐 한 분야의 ‘장인’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 사회는 대학·대학원 졸업장이 없는 장인을 더 가볍게 보기 때문이다. 아무런 학력(學歷)없이 ‘훌륭한 물건’ 하나를 만드는 데 일생을 거는 장인 정신은 이 시대에 미친 짓일 것이다. 경희여고 철학교사
○ 용어 설명
학벌(學閥)
⑴ 학문을 닦아서 얻게 된 사회적 지위나 신분. 또는 출신 학교의 사회적 지위나 등급.
⑵ 출신 학교나 학파에 따라 이루어지는 파벌.
학력(學歷): 학교를 다닌 경력.
학력(學力): 교육을 통하여 얻은 지식이나 기술 따위의 능력. 교과 내용을 이해하고 그것을 응용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능력을 이른다.
<표4> 조선후기 신분제의 변화 양반호 평민호 천민호 1690(숙종 16)년 8.3% 51.1% 40.6% 1730(영조 6)년 15.3% 56.3% 28.4% 1780(정조 4)년 34.7% 59.9% 5.4% 1850(철종 1)년 65.5% 32.8% 1.7% 자료: 대구호적(大邱戶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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