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녀가 친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오랜 전통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이혼이나 재혼을 하는 가정이 급증하면서 친아버지의 성을 따라야 한다는 것 때문에 고통 받는 자녀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반드시 친아버지의 성만을 따르도록 하는 것은 우리 헌법에 어긋나는 일이 아닐까요?
[1] 키워드 및 배경지식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의 모든 생활관계는 자신을 다른 사람과 구별하여 특정 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개인을 특정 하는 가정 기본적인 기호는 ‘성명(姓名)’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때 성(姓)은 개인의 혈통을 상징하는 기호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부와 모로부터 동시에 혈통을 이어받기 때문에 부의 혈통과 모의 혈통 가운데 어떠한 혈통을 성으로 나타낼 것인지가 문제가 되지요. 우리 민법은 오랜 사회의 전통에 따라 부의 성을 자신의 성으로 사용하도록 하는 이른바 ‘부성주의(父姓主義)’를 강제하고 있습니다.
[2] 헌법재판소 결정(2005년 12월 22일)
헌법재판소는 부와 모의 양계혈통을 모두 성으로 반영하기 곤란한 점, 부성의 사용에 관한 사회일반의 의식 등을 이유로 들어 ‘부성주의’가 원칙적으로는 합헌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태어난 아이에게 성을 부여할 때 아버지가 이미 사망했거나 부모가 이혼해서 어머니가 단독으로 친권을 행사하고 양육할 경우에는 아버지의 성을 쓰도록 하는 것이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침해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입양이나 재혼 등 가족 관계에 변동이 있을 때 구체적인 사정에 따라 양부 또는 계부의 성으로 바꾸는 것이 개인의 인격적 이익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도 일방적으로 친아버지의 성만 따르도록 하는 것은 개인의 인격권을 침해한다고 보았습니다. 즉 부성주의는 원칙적으로는 합헌이지만 예외적으로 위헌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반대 의견도 있었습니다. 먼저 부성주의는 모든 사람이 아버지의 성을 따르도록 하고 어머니의 성은 쓸 수 없도록 해서 남성과 여성을 차별하고 있으므로 전면적으로 위헌이라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반면에 부성주의는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유효한 생활양식이자 문화현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므로 전면적으로 합헌이라는 의견도 제시됐습니다.
[3] 생각 키우기
부성주의는 우리 사회에서 오랜 세월 반복되며 이어져온 전통문화입니다. 그러나 어떤 문화가 전통문화로서 오랜 세월동안 이어져 내려왔다고 하더라도 만고불변의 진리는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전통문화란 역사성과 시대성을 띤 개념으로서 우리 헌법의 가치질서, 인류의 보편가치, 정의와 인도정신 등을 고려하여 현대적인 의미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그 시대의 정신에 따라 계승되어야 할 전통문화도 있고 폐기되어야 할 전통문화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 헌법은 제정 당시부터 혼인의 남녀평등을 헌법적 혼인질서의 기초로 선언했습니다. 이로써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이고 봉건적인 혼인질서를 더는 용인하지 않겠다는 헌법적 결단을 표현한 것이지요. 현행 헌법에 이르러서는 양성평등과 개인의 존엄이 혼인과 가족제도에 관한 최고의 가치규범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습니다.
그렇다면 부성주의는 이제 포기해야 하는 전통문화가 아닐까요? 아버지의 성을 따라야 한다는 강제성 때문에 재혼이나 입양을 한 가정의 자녀가 불이익을 받는다면, 그것은 재혼이나 입양 자체에 대한 사회적 편견 때문이지, 부성주의 때문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성주의를 폐지하고 자유롭게 성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만 그러한 사회적 편견을 없애고 남녀평등과 개인의 인격권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4] 더 생각해 봅시다
호주제도에 찬성하는지 아니면 반대하는지를 밝히고, 그 이유를 말해 보라. (숙명여대 2003학년도 정시 구술 문제)
[5] TIP
호주제 찬반론도 부성주의 찬반론과 마찬가지로 남녀평등과 전통문화가 갈등을 일으키는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2005년 호주제의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그에 따라 국회는 민법을 개정하여 호주제를 폐지했습니다. 위와 같은 문제에 답변을 할 때는 전통문화란 시대성과 역사성을 갖는 것이므로 반드시 현대적 시각에서 이해하여야 하며, 따라서 계승해야 할 전통문화와 폐지해야 할 전통문화를 구별해야 한다는 점을 밝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easynonsul.com에 판례 원문과 관련 논술문제
임상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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