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토리라인
기울어 가는 귀족 집안의 딸 ‘로즈’(케이트 윈즐릿)는 철강 재벌의 아들 ‘칼’과의 정략결혼을 앞두고 있습니다. 칼과 함께 거대 유람선 타이타닉호에 오른 로즈는 칼에게서 ‘대양의 심장’이란 별칭을 가진 세계 최고의 다이아몬드를 선물받습니다.
영국을 떠나 미국 뉴욕을 향해 첫 항해를 시작한 타이타닉호. 승객 중엔 3등석 표를 가까스로 얻어 배에 오른 청년 ‘잭’(리어나도 디캐프리오)도 있었습니다. 무일푼인 잭은 미국으로 가 큰 부자가 되겠다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고 있죠.
‘인간이 만든 가장 크고 위대한 물건’이라는 타이타닉호. 거기서 우연히 만난 잭과 로즈. 서로의 자유로운 영혼과 소박한 심성에 반한 두 사람은 위험한 사랑에 빠집니다. 이에 로즈의 약혼자 칼은 질투심에 불타 잭을 제거할 음모를 꾸미죠.
이 순간, 그들의 운명을 바꿔 놓을 사고가 터집니다. 빙산에 살짝 부딪힌 타이타닉호에는 작은 구멍이 뚫리고, 이 구멍을 통해 바닷물이 유입되면서 타이타닉호는 침몰합니다.
절체절명의 위기. 타이타닉호의 잔해 위로 로즈를 끌어올린 잭은 마지막 한마디를 로즈에게 남긴 채 차디찬 대서양 바다 속으로 사라져 갑니다.
“반드시 살겠다고,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줘. 나를 위해 꼭 살아남겠다고….”
[2] 핵심 콕콕 찌르기
이런 뻔한 러브스토리에 도대체 무슨 숨겨진 의미가 있겠느냐고 반문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영화 ‘타이타닉’엔 진정 깊고 아름다운 메시지가 있습니다.
영화엔 두 개의 개념이 서로 충돌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타이타닉호’로 대표되는 거대한 물질문명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사랑’이라고 하는 인간의 작지만 소중한 마음이죠. 두 가지는 동일한 시간과 공간 속에 있지만, 사실은 서로 첨예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먼저 타이타닉호를 살펴볼까요? 길이 270m, 무게 4만6000t에 이르는 타이타닉호는 인류가 이룬 물질문명의 극대치입니다. 이 배를 움직이는 거대한 증기 터빈의 모습에서 우리는 인간이 이룬 산업화의 위용을 느낄 수 있죠(18세기 산업혁명을 촉발시킨 것도 영국에서 일어난 증기기관의 발명이었습니다).
하지만 타이타닉호엔 결정적인 결함이 있었습니다. 바로 인간의 ‘오만’이죠. 타이타닉호를 만든 ‘이스메이’라는 인물이 “이 배는 세상에서 움직이는 물건 중에 가장 큰 것”이라면서 늘어놓는 다음과 같은 자랑에는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는 인간의 위험천만한 교만이 묻어납니다.
“타이타닉호는 크기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크기는 무엇보다도 힘을 나타내니까요.”
그렇습니다. 거대 유람선 타이타닉호는 ‘크기(size)’와 ‘힘(strength)’을 신봉하는 인간의 산업화 정신,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이런 화려한 외형에도 불구하고 타이타닉호는 몸에 난 아주 작은 구멍 하나 때문에 침몰하고 말죠. 그만큼 인간이 쌓아 올린 물질문명은 헛되고 늘 불안한 것이라는 사실을 영화는 말하고 있는 겁니다.
‘외화내빈(外華內貧·겉으론 화려하지만 정작 속으론 빈약한)’이란 점에서, 타이타닉호와 이 배에 올라탄 일단의 귀족 무리는 본질적으로 같은 존재들입니다. 영화에 묘사되는 귀족들 역시 겉으론 허례허식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속으론 도덕적 타락에 물들어 있지 않습니까.
이 지점에서 진정 아름답게 빛나는 것이 잭과 로즈의 사랑입니다. 두 사람은 물질문명과 산업화의 상징인 타이타닉호에서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돈도 권력도 없는 무일푼 청년 잭과 쓰러져 가는 가문의 딸 로즈가 나누는 절박한 사랑은, 타이타닉호의 거대한 위용에 비하면 보잘것없고 미약하기 그지없죠.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결국 타이타닉호라는 거대하지만 유한한 존재를 이깁니다. 그러면서 영원해집니다. 타이타닉호는 침몰과 함께 그 생명을 다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잭의 희생적인 죽음과 함께 저 깊은 대서양 바다 속에 고스란히 봉인(封印·밀봉되어 도장을 찍음)되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니까요. 미약한 인간의 사랑은 타이타닉호처럼 크지도 화려하지도 힘이 세지도 않지만, 타이타닉호와 달리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영화 ‘타이타닉’ 속엔 이렇듯 ‘물질’과 ‘인간’, 혹은 ‘산업화’와 ‘사랑’이라는 두 개의 대립 항이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아름답고 깊은 메시지가 비로소 부각됩니다. 인간의 오만함은 자연의 호된 심판을 받고 스스로 무너지지만, 인간의 사랑은 오히려 영원히 살아남는다고 말이죠.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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