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간이역인 함백역 복원을 위한 터 매입이 결정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자리였다. 열 달간 펼쳐 온 복원 운동의 열매가 맺히는 순간이었다.
한국철도시설관리공단은 지난해 10월 31일 건물 노후 등을 이유로 함백역을 헐었다. 그러자 주민들은 “대한민국 석탄산업의 흥망이 담긴 문화유산을 보존해야 한다”며 복원운동을 펼쳐 왔고 지난달 30일 철도시설관리공단이 정선군에 역 터를 팔기로 하면서 복원이 확정됐다. 다음 달 복원공사를 위한 첫 삽을 떠 이르면 11월경 복원이 마무리된다.
자발적인 주민들의 힘으로 간이역 복원을 이뤄낸 사례는 처음이다. 복원운동 내내 주민들이 보여 준 참여 열기는 뜨거웠다. 문화재청에서도 이를 지역문화재 보존의 모범 사례로 손꼽고 있다.
함백역은 1957년 석탄 개발 계획의 하나로 설립된 한국 광산역사의 구심점. 당시 개통식 때 주요 장관과 주미대사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 국내서 가장 긴 나선형터널(2.6km)이 있는 곳이며 함백과 영월을 잇는 함백선의 유일한 역이었다. 고즈넉한 풍경과 어우러져 기차여행 마니아에게는 인기 있는 간이역 중 하나였다. 이런 함백역이 사라지자 주민들은 안타까워했다. 이곳에서 30년간 광원으로 일한 김승하 씨는 “역을 헐면서 현판은 말할 것도 없고 역사(驛史) 관련 문서, 역대 역장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진 소장은 “이곳 폐광촌을 문화관광부와 강원도가 탄광 문화가 담긴 근현대사 마을로 만들 계획이었다”고 말했다. 정부 한쪽에서 탄광촌 복원을 계획하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 그 문화유산을 파괴한 셈이다.
역이 헐린 뒤 주민들은 복원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역사적 사료가 절실하다며 국가기록원을 뒤져 함백역의 ‘숨은 역사’도 발굴했다.
지난해 11월 정선군은 주민들의 뜻에 공감해 역 터를 사들이기로 결정했고 주민들의 십시일반이 줄을 이었다. 국유 재산을 매매하는 까다로운 절차 때문에 용지 매입이 9개월 가까이 지체되면서 인근 땅값을 올리기 위한 바람몰이라는 소문도 나돌았으나 주민들은 포기하지 않고 복원과 이후 활용을 위한 좌담회를 꾸준히 열었다.
함백역 복원에 필요한 건축비는 1억여 원으로 예상된다. 주민들은 복원에 필요한 자재와 공사 등을 직접 맡을 계획이다. 전기 공사를 맡겠다는 주민, 조경용 나무를 내놓겠다는 주민 등 모두 앞 다투어 힘을 보태고 있다.
역이 완공되면 1950, 60년대 탄광촌 문화와 탄광사를 소개하는 ‘주민자치박물관’으로 운영하면서 현지 문화와 역사에 밝은 노인들이 해설사로 나설 생각이다. 진 소장은 “‘그래 봤자 오래된 간이역에 불과하지 않으냐’고 무시하는 이들이 있는데, 수백 년 된 건축물만 문화재로 보존하고 간이역 같은 역사적 삶의 현장을 없애 버리면 후대에 무엇을 문화재로 전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정선=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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