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이슈&이슈]영화‘화려한 휴가’와 과거청산

  • 입력 2007년 9월 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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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이 지난 과거의 비극 용서 받을 절차 필요하다

나치가 사라진 뒤, 독일 국민은 한 명도 빠짐없이 긴 질문지에 답해야 했다. 나치를 돕지는 않았는지, 도왔다면 어떤 일을 했는지 등등. 조사의 목적은 나치 협력자들을 ‘처단’하는 데 있지 않았다. 나치 독일의 역사는 십년이 훌쩍 넘는다. 뒤를 파다 보면, 평범한 사람들도 히틀러를 따르고 도왔던 경험이 하나 둘은 나왔을 것이다.

새로운 독일 정부는 과거를 깨끗이 털어버리려고 이런 ‘이벤트’를 벌였던 거다. 잘못을 털어놓고 마땅한 죗값을 치르면 더는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다. 물론, 시민 대부분은 단순 협조자였기 때문에 별다른 처벌 없이 반성만으로 ‘과거 청산’은 마무리됐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잘못을 인정하고 끝까지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국제사회의 존경을 받곤 한다. 정직하고 솔직한 태도는 잘못을 확실하게 매듭지었을 때 나온다. 독일 국민 하나하나의 과거를 확실히 짚고 반성하는 절차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독일은 지금 일본처럼 뻔뻔한 변명만 늘어놓고 있을지 모른다. 뒤가 구린 몇몇 사람들이 여전히 자신의 과거를 감추고 정당화하려는 탓이다.

우리의 과거를 돌이켜보자. 우리에게는 ‘과거 청산’ 과정이 있었을까? 과거 청산이 꼭 처단이나 숙청을 뜻하지는 않는다. 죄 지은 이들에게는 ‘커밍아웃’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래야 어두운 과거는 비로소 마침표를 찍는다. 한낱 소시민이 어두운 시대 상황과 널리 퍼진 공포 분위기에 맞서기란 쉽지 않다. 심지어 책임 있는 지위의 사람도, ‘처자식 때문에’ 불의에 눈을 질끈 감을 때가 있다.

독재자는 결코 독불장군이 아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별 수 없이 그네들 뒤를 따른 사람들 덕에 힘을 쓸 수 있었다. 독재자가 무너지고 나면 악에게 봉사했던 기억은 모두의 상처로 남는다.

일제가 우리를 지배했던 기간은 35년이 넘는다. 갓난아이가 장년에 이르는 세월이다. 누구에게라도 조금씩의 친일 경력은 남을 수밖에 없다. 광주민주화운동에는 숱한 군인과 공무원의 상처가 남아 있다. ‘진압군’이었던 젊은이들도 대부분은 선량한 시민이었을 뿐이다. 어쩌지 못한 시대 상황에 치였다면, 그들에게도 잘못을 털어놓고 용서받을 국가적인 절차가 필요하지 않을까?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가 600만 관객을 훌쩍 넘겼단다. 비극의 세월도 20여 년을 훨씬 넘어가고 있다. 이제는 마침표를 찍을 때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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