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압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사업=김 씨는 PF를 통해 3개 은행에서 3330억 원을 대출받았다.
PF란 미래의 기대수익을 근거로 돈을 대출받는 방식이다. 미국에서는 시공사의 보증 없이 사업성 자체에 대한 엄격한 판단만으로 투자가 이뤄지지만 국내에서는 다소 변형됐다. 사업의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 대형 건설사가 시공사가 돼 시행사에 대출 보증을 서는 방식이다.
따라서 시공사는 시행사를 까다롭게 선택해야 한다. 실적과 규모가 부실한 시행업자와 사업을 벌이다가 I사 대표 김 씨처럼 수백억 원을 횡령하는 사고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산8동 개발 사업 시공사인 P사는 “연산동 사업에 대한 사업성 검토를 충분히 했다”면서도 “시행업자가 토지 매입 서류 등을 위조해 돈을 횡령하려 들면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P사가 김 씨에게 사기를 당한 것인지, 아니면 P사가 김 씨의 I사를 시행사로 선정하는 과정에 외압이 있었는지 의심되는 대목이다.
민락동 놀이공원 용지 개발 사업은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B은행이 김 씨가 실소유주인 S사와 680억 원의 대출 계약을 할 때는 대형 건설사가 시공사로 참여해 지급 보증을 서지 않았다.
김 씨는 법인 2곳과 S사 주주 및 공동사업자 6명 등 8명의 보증인을 통해 50억 원을 마련해 계약금으로 지불했다.
여신 취급 관행을 깬 특혜성 대출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결국 B은행이 실제 지급한 465억 원 가운데 토지 구입 대금으로 쓰인 350억 원을 제외한 115억 원의 행방이 아직 묘연하다.
▽F학점 기업에 뭘 믿고 대출?=2003년 이후 집중적으로 금융기관에서 자금을 빌린 김 씨의 관련 회사들은 경영 상태가 F학점이었다.
한국신용평가정보(한신평)의 I사에 대한 신용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연산8동 아파트 사업 시행사인 I기업의 종합신용등급은 10단계 중 밑에서 3단계인 CC+였다. 상거래에 필요한 신용능력이나 거래의 안전성이 매우 낮은 기업을 뜻한다.
기업의 유동성을 측정하는 현금흐름등급 또한 I사는 6개 중 5번째 등급인 CF5로 현금흐름 수익성이 적자 상태인 위험 등급을 받았다.
2003년 4월 신용보증기금(신보)에서 20억 원의 추가 이행보증을 받은 김 씨 소유의 H사도 신보의 기업신용평가에서 6등급 중 5번째인 D등급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신보는 “D등급은 재무 요소의 항목일 뿐 종합신용등급은 B― 수준”이라고 말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기업의 상장성 등 비재무적 요인을 감안해 대출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I사처럼 실적도 없고 신용등급이 낮은 곳에 집중적으로 대출이 이뤄졌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부산=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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