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학교에 마을도서관을]금구초교 ‘금구학교마을도서관’

  • 입력 2007년 9월 10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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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강아지는 졸랑졸랑 뛰어갔습니다….” 충북 진천군 금구초교에 있는 금구학교마을도서관에서 카메라를 보며 ‘딴 짓’을 하던 유도현 군이 엄마 양관지 씨가 책을 읽어 주자 금방 다시 고개를 돌린다. 엄마 오른쪽에 이웃 전지은 양도 함께 보고 있다. 왼쪽은 유 군의 누나 다빈 양. 진천=정양환  기자
“그래서 강아지는 졸랑졸랑 뛰어갔습니다….” 충북 진천군 금구초교에 있는 금구학교마을도서관에서 카메라를 보며 ‘딴 짓’을 하던 유도현 군이 엄마 양관지 씨가 책을 읽어 주자 금방 다시 고개를 돌린다. 엄마 오른쪽에 이웃 전지은 양도 함께 보고 있다. 왼쪽은 유 군의 누나 다빈 양. 진천=정양환 기자
대표 김수연 목사
대표 김수연 목사
“엄마야 누나야 도서관으로 마실 가자”

《고향 마을에 ‘작은 도서관’이 생기자 아이들의 생활이 바뀌었다. 어른들의 마음도 움직이고 마을의 공기가 달라졌다. 본보와 사단법인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대표 김수연)이 함께 펼치는 ‘고향 학교에 마을 도서관을’ 운동은 이처럼 고향 마을에 책과 문화의 향기를 불어넣자는 프로젝트. 현재 80여 곳에 설치된 학교마을도서관들의 운영 실태와 마을 주민의 책읽기 생활을 시리즈로 소개한다.》

네 살배기 도현 군은 오늘도 신이 났다. 4일 저녁밥을 먹자마자 엄마를 졸라 집을 나섰다. 추적추적 비까지 내리지만 유도현의 성화를 누가 말릴까. 하긴 엄마도 누나 다빈(8) 양도 그다지 싫지 않은 눈치. 옆집 지은(5) 누나도 벌써 건너와 ‘마실’ 따라 나설 채비를 했다.

도현이네가 가는 곳은 누나가 다니는 금구초등학교다. 밤에 웬 학교? 아직 입학도 안 했지만 도현과 지은에게 학교는 ‘책이 이따 만큼 많은’ 놀이터다. TV보다 재밌는 도서관이 있으니까. 아이 어른 마을 사람이면 누구나 좋아하는 ‘금구학교마을도서관’이 있기 때문이다.

○ “요즘 도서관 ‘마실’ 가는 게 유행”

오후 8시경. 꽤 밤이 깊었지만 도서관엔 15명 남짓 모여 있었다. 다빈 양은 조용히 읽고 싶은 책을 고르고 도현 군과 지은 양은 엄마에게 읽어 달라고 채근한다. 주위의 다른 엄마들과 눈인사를 나누던 도현 군 엄마 양관지(34) 씨는 “일주일에 두세 번은 도서관에 온다”면서 “요즘 동네에서 아이들과 도서관에 오는 게 유행”이라고 말했다.

도서관 담당 김창권(31) 교사도 “도서관이 생기면서 마을 분위기가 변했다”고 말했다. 금구초교가 자리한 충북 진천군 이월면 내촌리는 도서관이 문 열기 전엔 부모와 아이들 사이에 ‘삭막함’이 흘렀다. 젊은 학부모들은 농사를 짓거나 읍내에서 맞벌이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저녁에나 들어오니 함께 할 놀이가 없었다. 학원 다닐 처지도 아닌 아이들은 그저 ‘쏘다니는 게’ 일이었다.

“가족이 함께하는 일이라곤 TV 보는 게 다였죠. 아이들은 TV 안 보면 그저 몰려다니고. 부모들 처지에서 안타까웠지만 방법을 몰랐어요. 근데 지난해 12월 도서관이 생기면서 변하기 시작했죠. 저녁에 퇴근해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에 올 일이 생긴 거예요.”

6학년 김진수(12) 군도 비슷한 처지였다. 아빠 엄마가 맞벌이를 하니 저녁시간 TV와 인터넷이 시간을 ‘때우는’ 전부였다. 도서관은 그런 진수 군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 줬다. “책 읽는 즐거움을 배웠어요. 역사에 관심 많다는 것도 그때 깨달았고요. 요새는 고려시대 이야기가 너무 재밌어요. ‘밤늦게 어딜 돌아다니느냐’던 엄마도 도서관에 간다면 좋아하세요.”

○ “마을의 사랑방이 생긴 셈”

이전에도 금구초교에 도서관은 있었다. 2000여 권의 책이 있었지만 철 지난 아동도서가 대부분이었다. 고학년은 재미없어 했고 그마저 학교가 파하면 문을 닫았다. “그저 이름만 도서관이었다.”(정기화 금구초교 교감)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에서 제의가 들어온 건 지난해 여름. 정기화(44) 교무부장은 “볼 것도 없다 싶었다. 교사도 모두 찬성했다. 진천군과 교육청도 적극 도와주겠다고 하고. 내심 걱정했던 학부모들도 적극 동의해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고 말했다.

교육청의 지원을 받아 도서관부터 뜯어고쳤다. 웬만한 대도시 도서관보다 더 깔끔해졌다.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 측이 성인 도서 1000여 권을 포함해 도서 3205권을 들여왔다. 이리저리 모두 7100여 권의 책이 모이자 12월 14일 마을 주민이 함께 모여 개관식 잔치를 벌였다.

문제는 운영이었지만 교사와 학부모가 발 벗고 나섰다. 교사 6명이 자원으로 순번을 정해 야근을 했다. 수업 때문에 자리를 비울 땐 자모회에서 도서관을 지켰다. 자모회장이자 명예마을도서관장인 김선희(46) 씨는 “모두가 합심해 나섰던 건 단순히 도서관 하나가 아니라 우리 마을에 숨통을 틔워 주는 사랑방이 될 것이란 믿음이 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 교감은 “문화적 혜택이 없는 시골마을에서 학교마을도서관은 도시에서 생각하는 이상의 큰 의미를 지닌다”면서 “아이는 물론 어른과 교사 모두가 새롭게 태어나는 기쁨을 맛봤다”고 말했다.

진천=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마을학교를 지역문화센터로!”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 출범 16년째… “올해도 도서관 30곳 개설”

“시골마을 학교를 지역문화센터로 만들자.”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의 학교마을도서관 만들기는 1991년 7월 전북 원천마을도서관을 시작으로 올해 16년째를 맞았다. 준비 기간까지 포함하면 20여 년이 걸렸다.

‘작은 도서관…’은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길을 걸어왔다. 강원도 산골마을부터 제주 추자도 섬마을까지 전국 80여 곳에 도서관을 세웠다. 단순히 도서관을 세우는 데 그치지 않고 운영과 관리 등에 학교와 마을 주민들이 함께하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특히 1991년 9월 강원 영월군 무릉마을도서관을 시작으로 강원도에만 30여 곳을 개설했다. 다른 지역보다 문화 소외가 심한 상황을 고려한 안배였다.

학교마을도서관은 시골마을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대도시와 해외에도 세웠다. 서울에도 강남구 삼성2동 마을도서관(1998년)을 비롯해 개포1동과 일원1동에 도서관이 들어섰고, 1992∼94년에는 중국 옌볜과학기술대 도서관에도 4만 권의 책을 기증했다.

‘작은 도서관…’은 올해 30곳의 학교마을도서관을 열 계획으로 4일 경남 거창군 가조초교를 포함해 지금까지 16개를 세웠다. 이달에도 경남 함양군 안의초교(14일)와 거창군 북상초교(21일)에 학교마을도서관을 개설할 예정이다.

이 단체의 대표 김수연 목사는 “국민의 독서량은 국가 발전 속도와 비례한다는 믿음으로 지금까지 왔다”며 “학교마을도서관 운동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뜻을 함께하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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