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허승호]이불 속엔 法 없다?

  • 입력 2007년 9월 11일 03시 01분


경찰서 유치장에 가 보신 적이 있는가? 안 믿을지 몰라도 그곳에 갇힌 사람의 혐의 중 가장 흔한 것이 간통이다. 매일 새벽 경찰서를 돌면서 충격을 받은 어느 초년병 기자는 이를 일일이 취재해 기사를 썼다. 그러나 기사가 지면에 실리지 않자 사건들을 유형화해 ‘한국사회의 간통’이라는 기획기사를 쓰기도 했다. 지켜보다 못한 선배 기자들이 “신문을 3류 에로지(紙)로 만들 생각이냐”고 꾸짖었다. 간통 문제에 대한 신참기자의 집착은 일단락됐다.

▷대부분의 인간 사회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협력해서 아이를 기른다. 이혼한 아버지도 자녀 부양 책임을 나눠진다. 하지만 오랑우탄 기린 등 다른 포유류나 곤충 등이 말을 한다면 “아버지에게도 양육 의무를 지우는 인간의 제도는 웃긴다”고 할지 모른다. 이들 동물 세계에서 거의 모든 수컷은 교미가 끝나자마자 그 암컷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다른 상대를 찾아 나서기 바쁘다.

▷이런 난교(亂交) 상황에서는 간통죄가 성립할 수 없다. 고정된 배우자가 있을 경우에만 배신이 문제가 된다. 따라서 ‘간통이 문제되는 동물은 성적(性的)으로 가장 정숙한 종’이라고 뒤집어 생각할 수도 있다. 사실 사람뿐 아니라 긴팔원숭이, 알락딱새 등 일부일처제를 택한 동물들은 기회만 생기면 간통을 시도한다. 생물학자들은 다음처럼 해석한다. ‘고정된 짝을 이룬 암수 사이에도 서로 자신의 유전자를 더 많이 퍼뜨리려는 경쟁과 속임수가 있기 마련이다. 이 같은 짝짓기 전략이 진화한 결과가 간통 및 그에 대한 방어기제인 질투와 감시다.’ 이쯤 되면 간통은 동물의 유전적 본성이라 할 만하다.

▷한 판사가 헌법재판소에 간통죄에 대해 위헌 심사를 청구하면서 간통죄 존폐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간통죄 조항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며, 국가의 형벌권이 이불 속까지 규율하면 안 된다’는 게 청구 이유다. 간통죄로 고소당하는 아내가 늘어나면서 여성계에서도 간통죄 존속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작아졌다. 물론 간통죄가 폐지돼 형사처벌을 하지 않는다 해도 도덕적 민사적 책임까지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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