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대화문화아카데미가 주최하는 ‘내신 제도의 타당성과 대입선발 자율권’ 토론회에서 내신 반영을 축소하고 대학수학능력시험과 본고사 비중을 높이자는 주장이 제기돼 관심을 끌고 있다. 주제 발표자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허경철 초빙연구위원은 “내신 제도는 반세기가 지나도록 정책적 효과에 대한 검증을 하지 못한 채 대학과 정부의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며 근본 대책을 촉구했다.》
▽학력 격차 외면하는 내신=교육인적자원부는 대학에 내신 실질반영비율을 30% 이상 반영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대학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교육부는 내신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2008학년도 대입부터 수능 9등급제와 함께 상대평가에 의한 학교생활기록부 9등급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대학들은 “상대평가를 통해 내신 부풀리기가 줄었지만 지역 간, 학교 간 학력 차이가 엄존하는 현실을 무시하고 내신을 무조건 똑같이 인정하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대학들의 이 같은 방침은 내신과 수능의 불일치 현상이 심각한 현실 때문이다. 실제로 12개 고교의 6월 수능 모의평가 성적을 분석한 결과 학교 간 학력 격차는 여실히 드러났다.
서울 지역 2개 외국어고교 592명 중 40%, 경기 지역 3개 외고 1084명 중 22.4% 등 평균 28.6%의 외고생이 언어 수리 외국어 3개 영역에서 1등급을 받은 반면 일반계 고교에서는 1813명 중 2%만이 1등급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9등급제의 학생부 평가 방식으로 환산하면 외고생은 3.4등급, 일반고 학생은 0.5등급이 된다.
한국고용패널조사 자료에서 2005학년도 98개 고교 수능 응시생들의 수리영역 백분위 점수를 분석한 결과에서는 광역시 평균 54.87점, 중소도시 48.41점, 서울 47.17점, 읍면 34.78점 등 현격한 지역 차이가 나타났다.
이 같은 지역 간, 학교 간 학력 격차를 인정하지 않고 전국 2200여 개 고교의 실력이 모두 같다는 전제하에 적용되는 현행 내신 강화 움직임은 오히려 학생들의 실력을 왜곡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식지 않는 내신 공방=교육 전문가들은 내신 강화로 오히려 내신 사교육이 성행하고, 상대평가로 인해 학생 간 경쟁이 과열된다는 부작용을 지적해 왔다.
내신을 강화하면서 학생들은 수능, 내신, 논술 등 3가지를 모두 잘해야 하는 ‘죽음의 트라이앵글’에 내몰리고, 사교육을 시킬 수 없는 서민이 더 피해를 본다는 것이 중론이다.
한 번 내신관리에 실패하면 3학년 때 아무리 열심히 해도 회복할 수 없어 패자부활전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비교육적인’ 측면도 있다는 지적도 많다.
교육 전문가들은 정부도 학교 간 학력 격차를 인정하면서 실태를 밝히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곽병선 경인여대 학장은 “모든 고교가 동일하다고 전제하는 것은 현실 기만”이라고 꼬집었다.
바른교육권실천행동이 지난달 28일 주최한 대입 내신 관련 토론회에서 이인호 명지대 석좌교수는 “평준화정책이 시행된 지 30여 년이 지났지만 오히려 학생 간, 학교 간 학력 차는 더 벌어졌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대학이 모든 고교의 내신 성적을 똑같이 평가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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