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스파이 영화치고는 참 이상합니다.
첩보원인 주인공이 ‘얼짱’이나 ‘몸짱’도 아닌데다, 기억상실증까지 걸린 인물이지요.
자신의 정체(아이덴티티)를 알기 위해 세상을 떠도는 그는 낭만적인 웃음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고뇌에 찬 표정입니다.
영화 속 액션은 더더욱 이상합니다.
멋지고 스타일리시하기는커녕 살아남기 위한 처절함이 가득하니까요.
여기서 퀴즈.
우리가 익히 아는 스파이 영화의 대명사 ‘007’ 시리즈와 이 영화를 한번 비교해 보세요.
두 영화의 결정적인 차이점이 보이나요?
그 차이를 읽어내는 순간 이 영화의 진지한 메시지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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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시대 임무가 끝난 스파이들… “도대체 난 누구인가”
[1] 스토리라인
등에 두 발의 총상을 입고 바다를 표류하던 남자가 어부들에게 구출됩니다. 기억상실증에 걸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이 남자는 몸속에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번호가 숨겨져 있었단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은행 비밀금고에서 소지품을 찾은 남자. 자신이 ‘제이슨 본’이란 이름으로 살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수많은 가명으로 만들어진 가짜 여권과 신분증들을 발견하면서 남자는 더욱 혼란에 빠집니다. ‘나는 누구일까.’
이때부터 생명을 건 남자의 모험이 시작됩니다. 영문도 모른 채 미국 정보국 요원들에게 쫓기던 남자는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킬러들을 하나 둘 물리치면서 자기 몸 안에 ‘살인 본능’이 살아 숨쉰다는 사실을 직감합니다.
결국 남자는 자신이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이었으며 ‘트레드스톤’이란 비밀작전을 수행하면서 미국의 국익을 해치는 세계 각국 주요 인사들을 암살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아, 알고 보니 자신이 숙련된 살인자였다니!
[2] 핵심 콕콕 찌르기
이 영화 속에 숨겨진 수수께끼를 해결하기 위해선 제이슨 본이라는 주인공의 이름부터 풀어봐야 합니다. 제이슨 본.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그 유명한 007의 주인공 ‘제임스 본드’와 무척 흡사한 이름이군요. 여기서 우리는 이 영화가 007 시리즈와 모종의 관계가 있단 사실을 눈치 챌 수 있습니다.
007 시리즈가 뭔가요? 1962년 1편인 ‘살인번호’가 나오면서 무려 40여 년을 풍미해온 스파이 영화의 상징입니다. 007은 소련으로 대표되는 사회주의 세력과 미국을 위시한 자유민주주의 진영이 극한의 대립 속에서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닫던 시절, 즉 냉전시대의 공기를 머금고 자라난 시리즈입니다. 007이란 암호명을 가진 영국 정보국 요원 제임스 본드는 서방세계를 위협하는 소련 및 동구권 국가들에 잠입해 악당들을 무찌르고 자유세계를 보호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1991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동서 대립이 막을 내리고 만 것입니다. 이젠 미국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되었습니다. 자, 그간 자유를 수호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서 적국의 주요 인사들을 암살해 왔던 서방세계의 첩보원들. 주적(主敵·주된 적)을 잃은 그들은 이제 어찌 될까요?
그들은 혼란에 빠집니다. ‘나는 이제 누구와 싸워야 하지?’ 그러면서 ‘나는 과연 누구인가?’ 라는 질문의 소용돌이 속에 그들은 빨려듭니다. 맞서 싸워야 할 적을 상실한 그들은 허무감에 빠지면서 자신의 존재의미를 스스로 의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나는 누구인가(Who am I)?’ 바로 영화 속 주인공 제이슨 본이 스스로에게 미친 듯이 반복해 던졌던 저주 같은 질문입니다.
전 세계에 자유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첨병이라고 스스로를 믿어왔던 미국의 스파이들. 냉전시대가 끝난 지금,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합니다. 그리고 깨닫습니다. 결국 자신들도 국가가 길러낸 치명적인 ‘살인무기’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제이슨 본은 미국이라는 거대한 국가권력의 주체가 아니라, 한낱 수단이요 객체에 지나지 않았던 겁니다.
제이슨 본이 과거의 상관이었던 콘클린을 향해 “도대체 난 누구냔 말이야” 하고 부르짖자 콘클린이 맞받아치는 대답에는 국가권력의 도구로 전락하고만 개인의 슬픔이 묻어납니다.
“넌 미국 정부의 소유물일 뿐이야(You are US government's property)!”
그렇습니다. 영화 ‘본 아이덴티티’는 ‘007’ 시리즈가 수십 년간 설파해온 ‘정의롭고 낭만적인 스파이’에 대한 강력한 부정이자 참회입니다. 자유의 수호자임을 자처했던 서방세계의 스파이들. 그들 역시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아버지를 잔혹하게 죽여 온 ‘살인범’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죠.
CIA가 공항과 기차역에 깔린 수많은 폐쇄회로 TV와 각종 첨단 도·감청 장비를 불법적으로 사용해 제이슨 본을 옥죄어 들어가는 장면은 거대한 국가권력에 희생되는 연약한 개인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어쩌면 이게 국가의 본질인지도 모릅니다. 개인을 영웅으로 만들었다가도 한순간 적으로 전락시키기도 하는….
생각해 보세요. 자신의 과거를 송두리째 잊어버리는 기억상실증은 어쩌면 제이슨 본이 필사적으로 원했던 피난처인지도 모릅니다. 무자비한 살인으로 얼룩진 자신의 과거를 스스로 망각함으로써 엄청난 죄책감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제이슨 본. 결국 그의 기억상실증은 고통스러운 과거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자기방어 기제라고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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