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상습 성폭행 강도 “이젠 누굴 믿나…”

  • 입력 2007년 9월 21일 03시 04분


《19년 경력의 현직 경찰관이 자기 관내와 인접한 지역에서 30∼40대 부녀자들을 납치해 성폭행하고 돈을 빼앗다가 붙잡혔다. 이 경찰관은 “가족들을 살해하겠다”고 협박해 성폭행한 여성을 은행에 보내 돈을 찾아오게 하는 등 극악한 행동을 일삼은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이 경찰관은 나쁜 근무태도와 경제 문제 때문에 ‘내부관리 대상’으로 분류돼 있었는데도 흉악 범죄를 계속 저지른 것으로 나타나 경찰의 인사 관리에 중대한 허점이 드러났다.》

고양시 주차장서 부녀자 상대 수차례 범행

불성실한 근무 - 경제문제 등 평소 ‘관리대상’

인사시스템 구멍… 고양서장 등 4명 직위해제

○ 흉악범 뺨치는 범행

경기 일산경찰서는 20일 강도강간 등의 혐의로 고양경찰서 원당지구대 이모(39) 경사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 경사는 지난달 29일 오후 11시 반경 고양시 일산서구 대화동 고양종합운동장 앞 공영주차장에서 시동을 걸려던 A(33·여) 씨의 승용차 뒷자리에 올라타 A 씨를 흉기로 위협했다.

그는 A 씨의 손발을 테이프로 묶어 조수석에 앉힌 채 호수공원 인근의 으슥한 곳으로 차를 몰고 가 A 씨를 성폭행하고 현금카드로 619만 원을 인출했다.

이에 앞서 1월 25일 밤 이 경사는 같은 장소에서 동일한 수법으로 B(43·여) 씨를 납치해 950만 원을 빼앗았다. 또 2월 8일 밤에는 C(34·여) 씨를 납치해 325만 원을 빼앗은 뒤 변태적인 성행위를 강요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 경사는 은행 점포 앞으로 피해 여성을 태우고 가 신용카드 등으로 돈을 찾아오도록 해 폐쇄회로(CC)TV에 찍히지 않았다. 또 이 과정에서 피해 여성의 신분증을 빼앗고 “신고하면 주소를 보고 집에 찾아가 가족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마스크를 쓰고 범행을 했으며 지문을 남기지 않는 용의주도함을 보였다.

○ 추가 범행 수사

같은 장소에서 반복되는 여러 사건의 범인을 잡기 위해 잠복근무하던 경찰은 19일 오후 8시 반 고양종합운동장 앞 공영주차장에서 여성을 납치하려던 이 경사를 현장에서 체포했다.

왕복 8차로 길 건너편 건물에서 망원경으로 주위를 살피던 형사들이 범행을 확인하고 달려간 순간 이 경사는 이미 피해 여성의 손발을 단단히 묶은 뒤 떠나려던 순간이었다.

이 경사는 지금까지 드러난 납치강도 3건과 체포 당시의 범행 외에 2차례 더 범행하려고 했으나 D(29) 씨 등 여성들이 차문을 열고 달아나는 바람에 미수에 그쳤다고 경찰에서 실토했다. 이 경사는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포기했다.

또 경찰은 2004년 이후 지난해까지 경기 고양, 파주, 의정부, 양주시에서 동일인이 저지른 14건의 강도강간 사건이 이 경사와 관련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협조를 얻어 유전자(DNA) 조사를 벌이고 있다.

○ 인사 관리 치명적 허점

1989년 순경으로 임용된 이 경사는 1997년 광명경찰서 근무 당시 뇌물을 받은 혐의로 면직됐다. 그러나 무혐의로 결론이 나자 이듬해 복직했다. 이후에도 그는 근무 태도가 불성실해 근무지가 자주 바뀐 것으로 알려졌다.

또 경찰은 이 경사가 지난해 10월 형의 빚보증을 섰다가 월급의 대부분을 차압당하는 등 경제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으며 이 때문에 경찰 내부에서 ‘관리 대상’으로 분류돼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관리 대상 직원은 매달 지구대장이 근무 태도를 점검해 서장에게 보고서를 내도록 돼 있지만 9개월에 걸쳐 반복된 그의 범행을 경찰 내부에서는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게다가 경찰은 19일 이 경사를 검거한 뒤 관련 부서와 관계자 전원에게 “외부 언급을 자제하라”고 지시하는 등 사건의 파장을 축소하는 데 급급했다.

경찰청은 이 사건과 관련해 이 경사를 즉각 파면하는 한편 문모 고양서장과 서모 고양서 생활안전과장 직무대리, 노모 원당지구대장, 박모 원당지구대 순찰팀장을 감독 소홀의 책임을 물어 직위 해제했다.

또 이 경사의 이전 감독 책임자였던 이모 경정 등 3명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기로 했다. 김상환 경기지방경찰청장에 대해서도 지휘 책임을 물어 서면경고 조치했다.

고양=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