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학교에 마을도서관을]강릉 연곡초 연곡마을 도서관

  • 입력 2007년 9월 22일 02시 58분


코멘트
강원 강릉시 연곡면 연곡초교에 있는 ‘연곡마을 도서관’은 낮에 도서관을 찾기 힘든 주민들을 위해 일주일에 두차례 밤에 문을 연다. 주민들과 아이들의 책읽기 열정이 교실에서 나오는 불빛과 함께 주변의 어둠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강릉=안철민 기자
강원 강릉시 연곡면 연곡초교에 있는 ‘연곡마을 도서관’은 낮에 도서관을 찾기 힘든 주민들을 위해 일주일에 두차례 밤에 문을 연다. 주민들과 아이들의 책읽기 열정이 교실에서 나오는 불빛과 함께 주변의 어둠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강릉=안철민 기자
우리 엄마는 야간 사서19일 오후 7시 ‘연곡마을도서관’을 찾은 김택윤 군이 야간 사서로 근무하는 엄마 강진숙 씨의 무릎을 베고 독서삼매경에 빠졌다.
우리 엄마는 야간 사서
19일 오후 7시 ‘연곡마을도서관’을 찾은 김택윤 군이 야간 사서로 근무하는 엄마 강진숙 씨의 무릎을 베고 독서삼매경에 빠졌다.
#땅거미가 진다. 항상 보던 어두움인데 왠지 초조하다. 주변이 어두워질수록 도서관의 불빛은 더 환하게 느껴진다. “오늘은 많이 와야 할 텐데….”

19일 오후 6시경 강원 강릉시 연곡초교에 있는 ‘연곡마을 도서관’. 5학년 김택윤 군의 어머니로 야간 사서를 맡은 강진숙(44) 씨는 걱정부터 앞선다. 매주 수 금요일 야간 개관을 결정한 뒤 12일부터 이를 시작했으니 아직은 사람들의 관심이 덜한 편이다.

“드르륵!”

6시 반쯤 들리는 문 열리는 소리가 반갑다. 입구를 보니 아들의 얼굴이 보인다. “택윤아∼.”

#“우리 엄마는 우리 학교 도서관 사서예요. 제가 다니는 연곡초교는 강릉 중심가에서 북쪽으로 12km 떨어진, 좀 외진 곳인데, 농사짓는 가족들이 많아요. 그래서 도서관을 일주일에 두 번 밤 9시까지 문을 열기로 했어요. 저는 책을 좋아하기 때문에 서둘러 왔어요. 프로게이머가 꿈인데 게임을 이기려면 다른 사람이 생각할 수 없는 작전을 구사해야 해요. ‘아서왕’ 같은 책 속에는 그런 지혜가 숨어 있어요.”(김택윤)

○ ‘사서’ 엄마와 ‘책벌레’ 아들

교실 2개를 합친 크기의 도서관 한쪽에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분홍 파랑 소파가 있다. 정보검색용 컴퓨터, 대형 TV 등을 갖춘 이 도서관은 이달 5일 새로 개관했다. 원래 학교도서관이 있긴 했으나 고향 학교에 마을도서관을 만들자는 운동을 펼치는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의 후원으로 어린이책 2000여 권을 포함해 3000여 권을 기증받으면서 마을도서관으로 새 단장을 한 것.

낮에는 학생들이 주로 이용한다. 전교생 180명 중 도서관을 하루에 한 번이라도 이용하는 어린이는 80여 명에 이른다. 방과 후에도 도서관에 머무는 아이들이 많다. 학교 측은 농번기 때 주민을 위해 마을도서관으로는 드물게 야간 개방을 계획했다. 하지만 외딴 마을도서관에 야간 근무를 할 사서를 구할 수 없어 시작부터 벽에 부닥쳤다.

도서담당 김선한(55·여) 교사는 “친숙한 마을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전문가 초청 강의’ ‘독서토론회’ 등을 기획하고 사서를 구하려 했으나 어려웠다”고 말했다.

야간 개관이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강진숙 씨가 나섰다. 강 씨는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하고 기업의 자료실에도 근무한 적이 있다. 하지만 80여 마리의 소를 키우는 남편의 일손을 거들어야 하는 주부가 저녁에 시간을 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책을 좋아하는 데다 나만의 독서 시간을 가지고 싶었어요. 남편도 흔쾌히 허락해 행복했어요.”

○ 연곡마을 사람들의 책사랑

오후 7시가 넘으면서 도서관으로 주민들이 하나둘 오기 시작했다. 도서관에 활기가 넘쳤다.

“택윤이 엄마 저희 왔어요. 김밥 좀 드세요.” “주원이 엄마. 오늘은 무슨 책 보실 거예요.”

시끌시끌해진 열람실. 동네 사랑방 같은 분위기가 이 마을도서관의 특징이다. 김선한 교사는 “도서관이 꼭 정숙해야 한다는 건 고정관념”이라며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안 주는 선에서 자유롭고 읽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게 우리 도서관의 장점”이라고 자랑했다.

한쪽에서는 주부 김정수(39) 씨가 다섯 살배기 아들 배강서 군에게 동화 ‘피터와 늑대’를 읽어주느라 여념이 없다. 택윤이는 엄마 무릎을 베고 누워 어린이용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읽는다.

“엄마. 다음에는 아빠랑 함께 와야겠어요.”

“아빠한테는 정호승 시인의 수필집을 추천했어. 술 좋아하는 아빠에게 교훈적인 내용이 가득하거든(웃음).”

강릉=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강릉 도는 책버스, 매일 올순 없나요”

버스가 지나가면 아이들이 손을 흔들기 시작한다.

최근 강릉시에 생긴 새로운 현상이다. 강릉 시내를 다니는 ‘찾아가는 책버스’ 덕분이다. ‘책버스’로 불리는 이 버스는 내부에 서가를 만든 뒤 2000여 권의 책을 비치했다. 35인승, 45인승 두 대가 번갈아 다닌다. ‘찾아가는 책버스’ 행사는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과 강릉시, 네이버가 후원하고 있다.

‘책버스’는 화 수 목요일 시내 보육원, 유치원, 공부방 3곳 등을 방문해 아이들에게 독서 습관을 함양하는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3월에 시작한 뒤 현재까지 방문한 곳만 100여 군데에 이른다.

20일 오전 10시 강릉시 송정동에 있는 동명초교 병설 유치원 앞에 선 책버스에 오르자, 10여 명의 아이들이 보였다. 책꽂이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집어든 김혜리(7) 양은 “버스 안에 책이 있네요. 책버스가 매일 왔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의 연경흠 관리실장은 “아이들이 책버스를 신기해하면서 책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며 “강릉 시내 중심과 주변부의 학력 차이가 커지고 책을 접하기 어려운 어린이들이 늘어나고 있어 책버스를 4대로 늘릴 방침”이라고 말했다.

강릉=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