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전에 영감 대리고 거창 병원에 가서 파리 아파서 주사 막고 약지고는 치과 가서 이 하나 뽁고 왔다. 오후에는 참깨밭태 약치고 콩순치고 순치대 지슴이 만나서 그그좀 내니라 고정 대해가 골까지고 저녁때가 대다.’(콩순을 치는데 잡초가 많아 쳐내느라 오후 해가 지고 저녁때가 되었다.)
정무순(69) 할머니는 틈틈이 일기를 씁니다. 이렇게 글을 쓸 기회를 만들지 않으면 “머릿 속에 들어간 한글이 도망갈까 겁이 나서”랍니다.》
할머니의 아버지는 마을 훈장 선생님을 했지만 딸에게는 글을 가르쳐 주시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살림 때문에 학교 다닐 형편은 안 되었고요. 광복이 되고 열 살이 넘어 뒤늦게 국민학교에 갔습니다. 할머니는 글을 몰라 공책을 온통 ×자로만 메우다가 사흘째부턴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정 할머니가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2006년 3월. 면사무소에 한글 공부방이 생기면서부터입니다. 곧장 공부방에 등록을 했습니다. 세금고지서도 읽고 우편물이 오면 받는 사람 난에 이름도 쓰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원래 할아버지가 도맡아 하던 일이지만 7년 전 오토바이 사고로 뇌수술을 한 후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해지셨습니다. 할머니가 사는 집에 찾아갔을 때도 저를 맞아 주신 할아버지의 말씀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할머니가 한글을 배운 또 다른 이유는 “버스를 잘 타기 위해서”랍니다. 그동안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셨답니다.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하거나 지나가는 버스를 일일이 세워 운전사에게 물어 보고 탔다고 합니다.
한번은 읍내에서 집에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다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타기에 따라 탔습니다. 30여 분이 지나서야 그 버스가 집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할머니는 2시간마다 한 대씩 오는 버스를 다시 기다려야 했습니다. 집에 홀로 계신 할아버지 생각에 무척 애가 탔던 기억입니다.
‘ㄱ, ㄴ, ㄷ’으로 시작한 할머니의 한글 공부는 이제 간단한 편지나 일기를 쓸 실력으로 부쩍 향상됐습니다. 농사일로 피곤한 데다 늦게 글까지 배우는 게 힘드시지 않느냐고 여쭤보자 “부끄럽다 생각하면 멀 배우는기고. 안 하믄 지 손해지”라고 답하십니다.
할머니의 소원은 재미없는 한글 교재 말고 글자도 큼직큼직하고 재미있는 책을 읽어 보시는 겁니다. 그래서 21일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경남 거창 북상학교 마을도서관이 개관된다는 소식에 마음이 무척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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