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말리는 ‘부부 맥가이버’…신발장 뚝딱, 외식땐 불판 연구

  • 입력 2007년 9월 27일 19시 18분


인천 서구 연희동의 김영택(35) 고은정(32·여) 부부 집에 들어서면 현관 벽에 높이 걸려있는 신발장이 눈에 띈다. 이번 추석 연휴 때 부부가 힘을 합쳐 완성한 것이다.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신발장을 현관 위쪽 벽에 설치해 버튼으로 오르내리도록 했다.

신발장은 부부 분업의 산물이다. 아내는 컴퓨터지원설계(CAD)를 통해 작품을 도안한 후 목재와 금속 부품을 구입해 신발장을 조립했다. 남편은 용접을 하고 벽에 설치하는 작업을 담당했다. 부부는 이 신발장을 '엘리베이터 신발장'이라고 부른다.

손재주가 유별나게 뛰어난 이 부부는 우리나라 기능장 부부 1호다. 기능장은 현장 실무 분야에서 최상급 숙련기능을 갖춘 사람에게 주어지는 국가자격증이다. 현재 국내에서 기능장 자격증을 가진 사람은 1만3561명(남 1만3097명, 여 464명)에 달하지만 부부가 함께 기능장을 가진 경우는 이들 부부가 유일하다. 남편은 용접, 아내는 기계가공 분야에서 자격증을 갖고 있다.

기계분야가 공통 관심사이다보니 이들 부부의 대화 주제는 여느 부부들과는 조금 다르다. 음식점에 가면 음식 맛에 대해 얘기하기 보다는 고기 불판을 앞에 놓고 "어떤 금속재료로 만들었나" "이런 식으로 만들면 고기가 덜 타겠다"는 얘기가 오간다. 생활 주변에서 편리한 아이디어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이들 부부의 취미다. '엘리베이터 신발장'처럼 주말에 서로 머리를 맞대고 뚝딱거리며 만들어낸 것이 30여점에 이른다.

울산과 인천에서 각각 상고를 졸업한 김 씨 부부는 1999년 한전기공 인천사무소에서 근무할 때 처음 만났다. 카풀을 하며 남편과 친해진 고 씨는 동료 남성들이 남편에 대해 좋게 평하는 것을 보고 결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먼저 기능장 도전을 권유한 쪽은 남편이었다. 당시 생산기계, 전산응용가공 등 2개 분야에서 산업기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던 아내는 기능장 시험을 보기 위해 기계를 직접 깎고 다루는 업무를 집중적으로 배워야 했다.

고 씨는 "기능장을 따겠다고 결심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각자 분야에서 최고가 되자'는 남편의 제안이 부담스럽기보다는 고마웠다"고 말했다.

2001년 가을 결혼한 부부는 신혼 기간을 고스란히 기능장 시험공부에 투자했다. 기능대학에 함께 입학한 부부는 업무를 끝내고 학교로 향해 12시까지 공부했다. 여름휴가는 도서관에서 보냈고 집안일은 물론 결혼 1주년 기념일까지 잠시 뒤로 미뤘다. 부부는 2002년 10월 나란히 기능장 합격 통지서를 손에 쥐었을 때 '일심동체'의 의미를 깨달았다고 한다.

고 씨는 "남성 중심의 거친 작업 현장에서 감독 업무를 담당하려면 힘들 일이 많았다"면서 "남편이 용접 지식을 물론 남성 직원들과 잘 지내는 법에 대해 귀띔해준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3, 4세짜리 아들 둘을 키우느라 얼마 전 회사를 그만 둔 고 씨는 현재 남편과 함께 창업을 준비 중이다. 언젠가 둘의 아이디어를 접목해 아내가 설계한 것을 남편이 만들어내는 시제품 제작센터를 운영하는 것이 부부의 꿈이다.

부부는 내년 초 기술기능 분야의 최고수 장인에게 주어지는 기술사 자격증에 도전할 계획이다.

김 씨는 "내친 김에 '기능장 부부 1호'에 이어 '기술사 부부 1호'라는 타이틀도 갖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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