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탈락한 교수들은 1, 2년 남은 계약기간 중 획기적인 연구 성과를 내놓지 못하면 이 대학에서 떠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국내 최고 수준의 이공계 대학인 KAIST 교수 여럿이 동시에 퇴출 위기를 맞음에 따라 교수 사회에 큰 파문이 일 것으로 전망된다. 또 ‘평생직장’처럼 여겨 온 교수직에 대한 인식 변화도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27일 KAIST에 따르면 이달 초 열린 ‘테뉴어 심사’에서 신청 교수 35명 중 43%인 15명이 탈락했다.
‘테뉴어 심사’란 교수로 임용된 뒤 일정 기간이 지나 연구 성과 등을 심사해 통과한 교수에게는 정년을 보장해 주지만 탈락하면 퇴출시키는 제도.
이번 심사에서 다수의 탈락자가 발생한 이유는 지난해 7월 취임한 서남표 총장이 올해부터 테뉴어 심사 기준을 대폭 강화했기 때문이다.
KAIST는 1971년 개교 이후 테뉴어 제도를 시행했지만 이 제도를 통해 퇴출된 교수는 이전까지 한 명도 없었다. 현재 400여 명의 교수 중 200여 명은 이미 이전 기준에 따라 정년을 보장받았다.
이번 심사에서 탈락한 교수들은 3년의 계약기간 중 남은 기간에 심사를 다시 신청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중 상당수는 단계적으로 퇴출 절차를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KAIST 측은 “테뉴어 심사를 신청했다 탈락한 교수 중 연구 성과가 좋지 않은 교수는 계약기간이 끝나면 더는 연장 계약을 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또 연구 성과가 중간 수준인 교수들도 계약기간을 2년 또는 1년으로 줄인다는 방침이다.
이번 조치와 관련해 이 대학 교수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다.
학과장을 맡고 있는 한 교수는 “서 총장이 테뉴어 심사가 ‘결코 간단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기 때문에 학과장, 학장들이 될 만한 사람을 엄선해 심사를 신청했는데 이런 결과가 나왔다”면서 “대부분의 교수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테뉴어 교수 최종 심사를 맡았던 이 대학의 인사위원회에서는 “이런 ‘악역’을 도저히 못 맡겠다”며 위원회를 탈퇴하려는 교수까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번 심사에서는 50대 교수들이 다수 탈락했다.
반면 다른 대학에서 최근 이 대학으로 옮긴 30, 40대 교수 몇몇은 높은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신규 임용과 동시에 테뉴어 심사를 통과해 정년이 보장됐다.
이 대학 고위 관계자는 “이번 심사는 나이 서열 호봉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실적과 성과만으로 이뤄졌다”면서 “테뉴어 심사 제도가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지적이 있는 것은 알지만 KAIST가 살아남고, 대한민국이 살아남기 위해 이런 개혁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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