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부지검과 부산지검은 ‘가짜 예일대 박사’ 신정아(35·여) 씨와 변양균(58) 전 대통령정책실장, 정윤재(44) 전 대통령의전비서관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남북 정상회담(10월 2∼4일)이 끝나는 다음 주말경으로 연기할 것으로 27일 알려졌다.
▽“신 씨, 터무니없는 후원금 요구한 뒤 삭감”=신 씨는 2004∼2005년 대우건설 측에 성곡미술관이 기획한 미술전시회를 후원해 줄 것을 부탁하면서 연간 5억 원을 요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신 씨가 대우건설을 방문하기에 앞서 변 전 실장은 고교 동기인 박세흠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신 씨가 찾아갈 테니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러나 대우건설 측은 신 씨의 요구액이 너무 많다고 보고 변 전 실장에게 깎아 줄 것을 부탁했다. 결국 2004, 2005년 성곡미술관 후원금은 당초 요구액의 5분의 1 수준인 1억 원씩으로 결정됐다. 대우건설은 지난해에도 9000만 원을 후원해 총 2억9000만 원을 성곡미술관에 후원했다.
성곡미술관에 각각 7000만 원과 1억 원을 후원한 산업은행과 포스코 등 다른 기업체의 후원도 비슷한 과정을 거친 것으로 보고 있다고 검찰 관계자는 전했다.
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신 씨가 변 전 실장의 도움 없이 기업체를 찾아갔다면 그 기업에서 일개 큐레이터를 쳐다보기나 했겠느냐”라고 말했다.
검찰은 신 씨가 ‘부적절한 관계’였던 변 전 실장의 배경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변 전 실장이 해당 기업에 압력을 행사해 신 씨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으로 재직한 2004∼2006년 이 미술관이 10여 개 기업에서 9억7000여만 원을 후원받은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특히 공적자금이 투입된 대우건설이나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은 정부가 대주주인 만큼 당시 기획예산처 장차관이었던 변 전 실장의 청탁을 해당 기업이 그냥 넘길 수 없었을 것으로 검찰은 판단하고 있다.
검찰은 또 신 씨가 미술계의 후원 관례를 뛰어넘는 거액을 요구한 이유가 후원금 모금 당시부터 일부 금액을 개인적으로 빼돌리기 위한 것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신 씨에게 이 부분을 집중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씨와 성곡미술관장, “서로 네 탓”=27일 박문순 성곡미술관장과의 대질신문을 마친 신 씨는 오후 2시 40분경 미소를 보이며 청사를 나왔다. 반면 박 관장은 신 씨보다 더 오래 조사를 받아 그 배경에 의문이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신 씨와는 무관한 박 관장의 횡령 혐의 등을 일부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 씨는 이날 검찰 조사에서 횡령한 돈을 박 관장에게 상납했으며 1300만 원짜리 목걸이도 그 대가로 받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박 관장은 “1800만 원짜리 목걸이는 대가없이 선물한 것”이라고 반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2년 계약직 직원으로 성곡미술관에 발을 들여놓은 신 씨는 박 관장의 총애 속에 승승장구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후원금 횡령 사실을 떠넘기기 위해 공방을 벌이는 관계로 변한 것.
박 관장의 개인적인 일에는 관여하지 않았던 다른 직원과 달리 신 씨는 박 관장 딸의 유학 문제까지 챙길 정도로 각별해서 사실상 미술관을 공동 운영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또한 검찰은 변 전 실장이 기획예산처 장차관 시절 이용했던 업무용 컴퓨터를 최근 임의제출 형식으로 확보해 분석 중이다.
검찰은 변 전 실장이 기획예산처 장관이던 2005년 홍기삼 당시 동국대 총장을 시내 호텔에서 만나 신 씨의 교수 임용 대가로 예산 지원 문제를 거론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진위를 확인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동국대 이사장인 영배 스님과 홍기삼 전 총장을 형사처벌하지 않을 방침이다.
“정윤재씨 친인척도 소환” 계좌 정밀추적
▽정 전 비서관 보강 조사 중=검찰은 추석 연휴 기간에 건설업자 김상진(42·구속 기소) 씨의 회사에 대한 세무조사 무마 로비에서 정 전 비서관의 역할과 관련해 김 씨와 정상곤(53·구속 기소) 전 부산지방국세청장을 상대로 벌인 소환 조사 내용 등을 토대로 이날 법원에 금융계좌 추적 영장을 포함한 추가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다.
정동민 부산지검 2차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정 전 비서관의 여죄를 포함해 혐의 전반에 대한 보강 수사를 벌이고 있다”며 “정 전 비서관의 친인척에 대해서도 필요하면 소환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지법은 이날 정 전 비서관에 대해 구속영장이 재청구될 경우 법원 내부 규정에 따라 20일 영장실질심사를 맡았던 염원섭 부장판사가 아닌 형사부의 다른 선임 부장판사가 영장을 심리하게 된다고 밝혔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부산=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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