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 경쟁시대… 교수質이 나라 운명 바꿀수도”

  • 입력 2007년 9월 29일 03시 19분


장순흥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학부총장은 28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정년보장 심사제도를 정착시키겠다”고 말했다. 교원 인사위원장인 장 부총장은 신청 교수의 43%를 탈락시킨 최근 심사에서 사령탑을 맡았다. 신원건  기자
장순흥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학부총장은 28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정년보장 심사제도를 정착시키겠다”고 말했다. 교원 인사위원장인 장 부총장은 신청 교수의 43%를 탈락시킨 최근 심사에서 사령탑을 맡았다. 신원건 기자
서남표 총장 “대학 개혁 반드시 필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기계공학과 학과장을 지낸 서남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은 지난해 7월 취임 후 꾸준히 대학 개혁을 강조해 왔다. 취임 1주년 기념 기자회견에서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는 서 총장. 동아일보 자료 사진
서남표 총장 “대학 개혁 반드시 필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기계공학과 학과장을 지낸 서남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은 지난해 7월 취임 후 꾸준히 대학 개혁을 강조해 왔다. 취임 1주년 기념 기자회견에서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는 서 총장. 동아일보 자료 사진
KAIST ‘테뉴어 심사’ 사령탑 장 순 흥 부총장

《“우리의 정년보장(tenure·테뉴어) 심사 제도가 가혹하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학이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28일 오후 대전 유성구 한국과학기술원(KAIST) 본부에서 만난 장순흥(53·핵공학) 교학부총장은 단호한 표정이었다. 교원 인사위원장인 그는 신청 교수의 43%를 탈락시켜 대학가에 파문을 일으킨 KAIST 테뉴어 심사의 사령탑이었다. 테뉴어 심사 제도는 연구 성과 등 심사 절차에 통과한 교수는 정년을 보장해 주지만, 탈락한 교수는 과감히 퇴출시키는 제도. 이미 선진국의 대다수 대학은 교수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이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장 부총장은 이번 심사의 파문을 의식한 듯 “외국의 명문 대학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명성이 있는 교수를 대거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교수들을 열심히 연구하게 만드는 테뉴어 심사 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보 28일자 A1 참조
KAIST ‘테뉴어 교수’ 심사 신청 35명중 15명 탈락 쇼크

▶본보 28일자 A12면 참조
“수재 소리 듣던 교수가 퇴출대상이라니…”

―테뉴어 심사 제도를 대폭 강화한 이유는….

“20세기가 노동자의 경쟁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지식인의 경쟁 시대다. 지식인이 얼마나 부가가치를 높이느냐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좌우된다. 그래서 대표적인 지식인인 교수를 열심히 일하게 하는 일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테뉴어 심사 제도는 교수가 열심히 일해 역량을 키우도록 만드는 지름길이다.”

―한국 대학의 현실은 어떤가.

“우수한 대학생들이 석박사 학위를 받으러 외국 명문 대학에 몰리고 있다. 국내 명문 대학에 갈지 고민하다가 결국 외국에 나간다. 이 때문에 일부 국내 명문대는 외국 대학에 학생을 공급하는 ‘피더 스쿨(feeder school)’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학생들이 국내 대학을 외면하는 것은 잘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떤 기준으로 심사했나.

“크게 3가지로 평가했다. 우선 교수 자신과 학교 측이 지목한 국내외 관련 분야 학자 10명에게서 1장씩 받는 평가서신(review letter)이다. 서신 가운데 외국 학자의 평가를 더 객관적인 것으로 본다. 다음으로 연구 성과와 논문, 강의평가(학생평가 포함), 연구비 수주 실적 등을 검토하고 마지막으로 인사위원들 간의 토론 결과를 반영했다.”

―강화된 테뉴어 심사 제도의 기대 효과는….

“우선 교수들이 열심히 일할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버틸 수 없다. 교수들은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내고 연구에 매진하며 강의에도 열성을 보일 것이다. 여기에다 국제적인 지명도를 얻기 위해 노력할 거다. KAIST의 테뉴어 심사 제도는 국제적인 명성과 인정을 중시한다. 국제 경쟁 시대에는 외국에서 명성이 있어야 한다.”

―KAIST 교수들은 다른 대학에 비해 우수한데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평가도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테뉴어 심사 제도는 외국 명문 대학과의 경쟁을 위한 것이다. 국내 대학과의 경쟁만 염두에 두었다면 테뉴어 심사를 강화할 필요가 없었다. 상대적으로 우수한 교수들에 대한 대우만 더 낫게 해 줬으면 됐을 거다.”

―이번 테뉴어 심사에서 탈락한 교수들을 만나 봤나.

“(한숨을 내쉬며) 충격을 많이 받아 괴로워하는 모습이었다. 서남표 총장이 심사 결과에 대해 함구령을 내린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심사에서 30, 40대 후배 교수들에게 밀린 50대 교수들의 충격이 훨씬 큰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가슴이 아팠지만 성적을 토대로 한 평가의 원칙은 지켜야 했다.”

―반발이 적지 않을 텐데….

“나이와 혈연, 지연을 배제하고 연구 성과 등을 토대로 공정하게 평가했기 때문에 어떤 문제 제기에도 대처할 수 있다. 이번에 KAIST의 테뉴어 심사 제도가 꼭 성공해야 한다. 대한민국을 위해 바람직한 일이다. 5년 정도 버티면 안정되고 10년 정도 지속하면 정착할 수 있다. 테뉴어 심사 제도를 보도한 동아일보 기사에 수많은 댓글이 따라붙었는데 대부분 잘했다는 의견이었다.”

―앞으로 이 제도가 정착하려면….

“심사는 엄격하게 하되 교수들에 대한 지원도 강화해야 한다. 올해 임용된 교수부터는 8년 내에 테뉴어 심사를 의무적으로 받아 탈락하면 학교를 떠나도록 채용 때부터 조건을 달았다. 그 대신 신규 임용 교수에게는 1인당 2억5000만 원의 연구 정착비를 준다. 연구 환경을 빨리 갖춰 연구에 매진한 뒤 평가를 받으라는 얘기다. 정부도 재원을 일률적으로 배분하지 말고 강도 높은 개혁을 하는 대학을 집중 지원해야 한다. 대학 평가에서는 개혁이 중요한 평가 요소가 돼야 한다.”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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