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아(35·여) 씨는 이날 검찰 조사를 받지 않았다. 결국 신 씨와 달리 아직 구속영장이 청구되지 않은 변 전 실장은 7차례 조사를 받은 신 씨보다 검찰에 더 자주 나온 셈이다.
검찰 관계자는 “영장을 청구할 때까지 앞으로 변 전 실장을 몇 차례 더 부를 것”이라고 말했다. 고위직을 지낸 주요 피의자를 구속 혹은 기소하기 전에 불렀다가 돌려보내기를 이렇게 많이 되풀이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검찰 주변에선 변 전 실장의 처지를 고사성어 ‘칠종칠금(七縱七擒·7번 잡았다가 7번 풀어줌)’에 빗대 ‘8종 9금’ ‘9종 10금’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변 전 실장이 수사의 최종 목표”=검찰 안팎에서는 변 전 실장에 대한 잇따른 소환을 수사의 타깃이 신 씨에게서 변 전 실장으로 옮겨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당초 신 씨는 변 전 실장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디딤돌이었지 수사의 최종 타깃은 아니었다는 얘기도 있다. 또 물증을 제시해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신 씨에 대한 추가 조사에 더는 매달리기 어려워졌다는 시각도 있다.
검찰은 다음 주말쯤 변 전 실장에 대해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하기 위해 신 씨가 학예실장으로 근무했던 성곡미술관에 10여 개 기업체가 9억7000만여 원을 후원할 당시 변 전 실장의 압력행사 여부를 입증하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검찰은 이날 성곡미술관 내 박문순 관장의 거주지를 압수수색해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확보했다. 신 씨를 동국대 교수로 채용할 당시 변 전 실장이 대학 측에 예산지원이나 대기업의 기부금 모금을 약속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동국대 재무회계팀 및 재단 사무실도 추가로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동국대 재단 이사장인 영배 스님의 수첩에 올 3월 말∼4월 초 ‘변 전 실장과 삼성펀드 협조요망’, ‘신 씨와 펀드문제 논의’라는 메모가 적힌 사실을 확인하고, 영배 스님이 신 씨의 가짜 학위 의혹을 무마하는 대가로 변 전 실장 등이 삼성 측의 대학기부금 지원을 약속했는지를 조사 중이다. 그러나 서울서부지검 관계자는 “변 전 실장이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고, 실제로 삼성 측이 지원을 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반면 신 씨는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18일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서울 강동구 강동가톨릭병원에 입원했던 신 씨는 열흘 만인 이날 오후 퇴원했다.
신 씨는 변 전 실장이 기획예산처 장관 때와 청와대 재직 시절 자주 들른 서울 종로구 내수동 ‘경희궁의 아침’ 오피스텔에 당분간 머물기로 했다.
신 씨는 퇴원 직후 오피스텔에 들어가려고 했으나 검찰이 압수수색 이후 출입문을 통째로 교체하는 바람에 3, 4시간 동안 변호인인 박종록 변호사와 함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변 전 실장이 신 씨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거액을 물겠다는 각서까지 썼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변 전 실장은 기획예산처 장관이던 2005년 5월 서울 시내의 한 호텔에서 홍기삼 당시 동국대 총장을 만나 “신 씨를 교수로 채용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대학의 예산 지원을 그 대가로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성곡미술관의 대기업 후원 당시에는 고교 동문인 기업체 임원을, 올해 7월에는 신 씨의 가짜 학위 의혹을 최초로 제기한 장윤 스님을 직접 만났다.
재경지검의 중견 간부는 “(신 씨가 변 전 실장에게) 세게 청탁했고, (변 전 실장이) 세게 움직였다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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