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표 KAIST 총장 “테뉴어 제도는 학생 위한 것”

  • 입력 2007년 10월 1일 03시 00분


지난해 7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으로 취임한 뒤 테뉴어 심사제도를 강화하는 등 대학 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서남표 총장. 그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테뉴어 심사제도는 세계적 명문대학과 경쟁하기 위해 반드시 정착시켜야 할 제도”라고 강조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지난해 7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으로 취임한 뒤 테뉴어 심사제도를 강화하는 등 대학 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서남표 총장. 그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테뉴어 심사제도는 세계적 명문대학과 경쟁하기 위해 반드시 정착시켜야 할 제도”라고 강조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교수는 대학의 주인이 아닙니다. ‘총장 직선제’가 교수가 주인이라는 착각을 만들고, 교수 평가를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테뉴어(tenure·정년보장) 심사제도는 대학의 진정한 주인인 학생들을 위한 것입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서남표(71) 총장은 본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테뉴어 심사제도가 제대로 안 되는 것은 (한국의 많은 대학이 채택한) 총장 직선제가 큰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1970년부터 지난해 7월 총장에 취임할 때까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와 학과장으로 재직하며 경험했던 엄격한 테뉴어 심사제도를 KAIST에 도입한 주역이다. 그는 강화된 테뉴어 심사제도를 실천에 옮겨(신청자 중 15명 탈락) 최근 대학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본보 9월 27일자 A1·12면 참조
▶KAIST ‘테뉴어 교수’ 심사 신청 35명중 15명 탈락 쇼크
▶“수재 소리 듣던 교수가 퇴출대상이라니…”

서 총장은 미국 출장에서 귀국하던 지난달 29일 밤 중간 기착지인 시카고 오헤어 공항에서 본보 기자와 전화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서 총장과의 일문일답.

―한국 대학에서 테뉴어 심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대학의 주인은 학생이다. 교수들은 연봉에 따라 다른 대학에 갈 수 있어 주인이라 할 수 없다. 그러나 교수가 총장을 뽑고 마음에 안 들면 내치며, 총장은 그런 교수들에게도 잘 보여야 하는 직선제 환경에서는 무능해도 교수를 퇴출시킬 수 없다. 총장이 선거 때문에 교수들에게 ‘떡’ 하나라도 더 줘야 하기 때문이다. 유럽의 많은 대학이 몰락한 것은 총장 직선제로 강력한 테뉴어 심사를 하지 못한 데 원인이 있다.”

KAIST는 외부 지원인사와 교수 협의회가 선출한 인사중에서 정부 대표와 기업인 등이 참여하는 이사회가 총장을 선출한다. 노벨상 수상자인 전임 로버트 로플린 총장과 서 총장은 외부 지원 방식을 통해 영입됐다.

―선진국 대학들은 테뉴어 제도를 어떻게 운영하나.

“MIT나 하버드대 등 미국의 명문대는 모두 강력한 테뉴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그 대학에서는 가능하면 교수가 30, 40대일 때 심사를 거치도록 한다. 한창 때인 그 나이까지 큰 연구 성과를 못 냈으면 나중에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젊은 나이에 심사를 해야 이후 30∼40년 동안 우수한 인재를 쓸 수 있다. 그만큼 심사에 신중을 기한다. 따라서 교수들은 열심히 일한다. MIT의 젊은 교수들은 주당 60∼80시간을 강의하고 연구하고 논문 발표하는 데 쓴다. 총장인 나도 매주 80시간 넘게 일하는데…. 국내 교수들도 그렇게 일해야 한다. ‘노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곤란하다.”

―심사가 너무 엄격하면 좋은 교수를 모으기 어렵지 않나.

“심사가 엄격하면 좋은 교수들이 안 올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능력 있는 교수는 같이 연구하는 교수들의 명성도 중시한다. 자기만큼 다른 교수들의 명성이 높지 않은 대학에는 가지 않으려 한다. 이 때문에 심사가 엄격한 MIT나 하버드대는 능력 있는 교수를 쉽게 확보한다. 교수들도 ‘자신’이 있기 때문에 심사가 까다로워도 모인다. 아직 과도기지만 KAIST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 올해 40여 명의 교수를 뽑는데 오히려 지원자가 예년보다 50% 늘었다.”

―교수 탈락이 드문 한국에서 탈락한 교수들은 타격이 심하지 않겠는가.

“일부에서는 ‘미국은 나라가 크고 교수 일자리가 많아 탈락해도 갈 곳이 많다’고 하지만 이것은 오해다. 사실은 명문대는 테뉴어 심사가 까다롭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심사에서 떨어진 교수도 유능한 것으로 인식해 다른 대학들이 서로 데려가려 애쓰기 때문이다. KAIST가 세계적 명문대학이 되면 같은 현상이 벌어질 것이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먼저 테뉴어 심사부터 강화해야 한다. 미국에서도 탈락한 교수들은 일반적으로 이를 수긍하지만 극히 일부는 소송을 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도 이의 제기나 소송은 이미 각오하고 있다. 그에 대비해 심사에 거듭 신중을 기했다.”

―심사제도의 정착을 위해 선결해야 할 일은….

“먼저 결단이 필요하다. 교수들이 반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심사에서 탈락한 교수들도 잘 배려해야 한다. 그래야 마음 놓고 심사가 엄격한 학교에 지원할 것 아닌가. 이번에 20년씩 일한 교수들을 심사에서 떨어뜨리면서 고민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이 학교를 나가더라도 다른 대학에 정착할 수 있도록 학교 차원에서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다. 이번에 탈락한 교수들도 재기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 우선 세계적이고 획기적인 연구 성과를 내놓아야 한다. 강의를 잘하고 학교에 어떤 공헌을 하는지도 살펴보겠다.”

―한국 대학이 세계적인 대학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테뉴어 심사제도로 교수들이 연구에 매진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와 함께 국제적으로 경쟁을 하려면 예산을 많이 확보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연간 예산이 2조 원인 대학이 10개, 1조 원 이상인 대학이 50개를 넘는다. KAIST는 아직 규모가 작고 연간 예산도 3000억 원에 불과하다. 정부는 대학이 얼마나 열심히 연구하고 가르치는지, 내부 개혁을 하는지 살펴보고 예산 배분에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추진하고 있는 다른 개혁 방안은 어떤 것이 있나.

“내년 입학생부터 적용되는 ‘인성 위주 입시’가 중요하다. 인성면접 결과가 당락을 좌우할 이 제도는 한국적인 상황에서 객관성 논란 등이 예상된다. 하지만 20년 뒤 한국을 먹여 살릴 창의성 있는 인재 확보와 입시에 따른 성적 위주의 고교교육 개선을 위해 꼭 필요하다.”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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