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자 김상진 씨와 정 전 비서관 간의 금품 거래 등을 추가로 밝혀내기 위해 끈질기게 계좌를 추적하다 정 전 비서관이 1억 원이 넘는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를 포착한 것이다.
8월 31일 김 씨의 세무조사 무마 로비 의혹과 정 전 비서관의 로비 관여 정도, 정상곤(53·구속기소) 전 부산지방국세청장이 김 씨에게서 받은 뇌물 1억 원의 용처에 대한 보완 수사를 시작한 지 한 달 만이다.
▽새로운 실마리 되나?=검찰은 지난달 20일 정 전 비서관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말을 아끼며 고심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구속영장 재청구를 적극 검토 중”이라는 말 만큼은 빼놓지 않았다.
정동민 부산지검 2차장은 지난달 28일 보강 수사 방향과 관련해 “정 전 비서관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이 발부될 것으로 예상하고 정 전 비서관 구속 이후에 진행할 계획이었던 수사를 앞당겨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속영장 기각에 당황하면서도 불법 정치자금 수사라는 비장의 카드를 준비하고 있다는 속내를 함께 내비쳤던 것이다.
정 차장은 또 “구속영장을 재청구한다면 어떤 판사가 실질심사를 해도 구속영장을 발부할 수밖에 없을 만큼 철저히 하겠다”고 다짐했다.
검찰이 정 전 비서관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토대로 수사를 더 확대해 그의 구속영장 청구에 빈틈없이 대비할 것임을 내비친 대목이다.
검찰은 불법 정치자금 차원을 넘어 건네받은 돈의 대가성을 밝혀 낼 경우 정 전 비서관에게 알선수재 또는 뇌물 혐의를 추가로 적용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정 전 비서관이 김 씨 등에게서 받은 돈의 규모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점도 부인하지 않고 있다. 이 경우 구속영장 재청구에 더욱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사안의 중대성 판단이 관건=정치인들에게 정치자금법 위반은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다. ‘정치인 모두 교도소 담장 위를 걷고 있다’는 말이 이를 뒷받침한다.
문제는 검찰이 그 자체만으로 구속영장 발부를 이끌어낼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그러나 검찰이 정 전 비서관에게 구속영장을 재청구하고 법원이 혐의가 소명됐다고 판단할 경우 형평성 차원에서 좀 더 무겁게 판단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정 전 비서관은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 ‘측근’이라고 공언한 인물이다.
누군가가 정 전 비서관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건넨 것이 사실이라면 다른 정치인의 경우보다 더 큰 기대를 가졌을 것이라는 가정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따라서 법원도 다른 정치인들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보다 무겁게 판단하는 것이 오히려 형평성에 부합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법원 출신 변호사들도 “대통령비서관을 지냈던 사람이 특정 로비 등과 관련해 돈 받은 혐의가 소명됐다면 사안의 중대성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했다”는 의견에 동의하고 있다.
1일 전국 고검장급 회의가 끝나면 정 전 비서관에 대한 구속영장 재청구 시기도 구체화될 것으로 보여 법원이 ‘사안의 중대성’에 대한 판단을 어떻게 할지 주목된다.
▽새로운 인물 등장하나=검찰의 보완 수사는 김 씨와 정 전 비서관, 정 전 청장을 주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김 씨의 정관계 로비 수사가 본격화할 때는 부산 출신 정관계 인사들의 소환 조사 및 형사처벌 관측이 난무했지만 정 전 비서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의혹도 한풀 꺾였다.
정 전 청장의 뇌물 용처 관련 수사 역시 답보 상태여서 수사 대상이 확대될 가능성에 대해 검찰 안팎에선 회의적인 관측이 짙었다.
그러나 정 전 비서관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는 돈을 준 상대방에 대한 확인 조사와 증거 확보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특히 검찰이 정 전 비서관의 혐의와 관련해 금액과 돈을 준 사람들까지 특정한 만큼 의외의 인물이 수사선상에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검찰 수사는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번질 수 있는 국면을 맞고 있다.
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