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이 논쟁과 관련되어 있는 개념들을 정의하고 그 현실을 살펴보자. ‘양심적 병역 거부(conscientious objector)’란 자신의 양심에 따라 집총(執銃·총을 쥐거나 지님)을 거부하거나 병역 자체를 거부하는 행위를 말한다.
〈표1〉 최근 5년간 병역 기피자 발생 현황 | ||||
2002년 | 2003년 | 2004년 | 2005년 | 2006년 6월 |
1,048(825) | 963(561) | 943(755) | 1,032(828) | 383(306) |
자료: 병무청 2006 국정감사 요구자료 (2006. 6. 30 기준) ( ) 안은 종교(신념)적 병역 거부자. |
〈표2〉 병역 거부자 발생 현황 | ||||||||
구분 | 계 | 2006년 6월 | 2005년 | 2004년 | 2003년 | 2002년 | 2001년 | 2000년 |
계 | 3,655 | 306 | 828 | 755 | 561 | 825 | 379 | 1 |
여호와증인 | 3,628 | 304 | 818 | 748 | 557 | 822 | 378 | 1 |
기타 | 27 | 2 | 10 | 7 | 4 | 3 | 1 | |
자료: 병무청 2006 국정감사 요구자료 (2006. 6. 30 기준) |
병역 거부자 발생 현황을 살펴보자. <표1>과 <표2>를 통해 병역기피자가 매년 1000명 내외이며, 이 중 양심적 병역 거부자가 상당수를 차지하고, 이들 대부분이 특정 종교인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표2>는 자칫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2000년부터 갑자기 병역 거부자가 발생한 것처럼 판단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표3>을 살펴보면 왜 이런 일이 나타나는지 알 수 있다. 2000년부터 병무청이 군 입대 자체를 거부하는 ‘입영(병역) 거부자’와 군 입대 후 총을 잡는 것을 거부한 ‘집총 거부자’를 구분해서 통계자료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표3〉 집총 거부자와 입영 거부자 현황 | ||||||
연도 | 집총 거부자 | (형량) | 입영 거부자 | (형량) | 합계 | 군복무기간 |
1994 | 233 | 3년 | · | · | 233 | 26∼30개월 |
1995 | 431 | 3년 | · | · | 431 | 26∼30개월 |
1996 | 368 | 3년 | · | · | 368 | 26∼30개월 |
1997 | 388 | 3년 | · | · | 388 | 26∼30개월 |
1998 | 504 | 3년 | · | · | 504 | 26∼30개월 |
1999 | 600 | 3년 | · | · | 600 | 26∼30개월 |
2000 | 682 | 3년 | 1 | · | 683 | 26∼30개월 |
2001 | 407 | 2년 6개월∼3년 | 379 | 1년 6개월 | 786 | 26∼30개월 |
2002 | 3 | 2년 6개월∼3년 | 825 | 1년 6개월 | 828 | 26∼30개월 |
2003 | 6 | 1년 6개월∼2년 | 561 | 1년 6개월 | 567 | 24∼28개월 |
합계 | 3,622 | 1,765 | 5,388 | |||
자료: 병무청 |
그럼 왜 2000년 이후 입영 거부자가 늘어나고 집총 거부자가 줄었을까? 집총 거부자에게 일률적으로 3년형을 내리는 군법원에 비해 민간법원은 입영 거부자에게 2년 이하의 형을 선고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집총 거부 대신 입영 거부를 선택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양심적 병역 거부 제도의 도입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근거는 무엇일까?
첫째,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국민개병주의를 채택하여 징병제로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는데, 개인적인 신념에 따라 군복무 여부를 결정하도록 할 경우 아무도 군대에 가려고 하지 않을 것이고 국가 안전 보장을 위한 병력 확보가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근거로 내세운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 대해서는 ‘지금은 군사력에서 수적 우세가 무조건 중요한 시대가 아니다’는 반론이 가능하다.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에서 봤듯이 이제는 보병과 탱크의 수와 같은 양적 개념이 아니라 기술력과 훈련을 통해 응집된 질적 개념이 중요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현대 전쟁에서는 국가의 경제력이 매우 큰 역할을 하는데, 남한과 북한의 경제력은 이제는 비교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격차가 벌어졌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에게 군복무를 강요한다 해도 그들이 최고의 전투력을 발휘할 거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결국 집총 거부자로 군 형무소에서 지내게 될 것이다.
둘째,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게 대체 복무를 허용하는 것은 법률의 통일성과 형평성을 해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표4>처럼 대체 복무 제도를 도입해서 병역의무와 동일하거나 그보다 좀 더 중한 내용의 복무를 하도록 한다면 공적 부담을 덜고 병무행정에 있어서도 평등의 원칙을 훼손하지 않을 수 있다는 반론도 가능하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은 무기만 들지 않는다면 어떤 험한 형태의 대체 복무라도 감수할 생각이 있다고 하면서 단순한 병역 기피자들과 스스로를 차별화하려 한다. 따라서 이런 제도적 장치를 통해 고의적인 병역 기피자를 충분히 가려낼 수도 있다.
양심적 병역 거부 논쟁의 핵심은 ‘헌법 제19조에서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2004년 5월 서울남부지원 이정렬 판사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관한 재판 판결문에서 양심에 대해 ‘세계관, 인생관, 이념, 종교적 신념 등은 물론, 이에 이르지 아니하여도 더욱 널리 개인의 인격 형성에 관계되는 내면적 판단 및 윤리적 판단을 포함한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내면적 판단에 따른 결정을 행동으로 옮겨서 실현시킬 수 있는 ‘양심 실현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는 양심 실현의 자유란 측면에서 인정해야 한다고 봤다.
윤상철 경희여고 철학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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