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상으로도 고려대와 연세대는 유사한 유형의 문제를 예시문항으로 제시했습니다. 제시문을 4개씩 주고, 그에 따른 문제를 3개 준 것입니다. 문항의 유형을 보면 우선 제시문에 대한 이해와 분석 능력을 묻는 문제가 반드시 포함됩니다.
고려대의 1번 문항인 요약 문제가 그러하고, 연세대 2차 예시문제의 2번 문항인 ‘두 제시문의 주장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 분석하라’는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연세대는 주어진 제시문에 근거해서 답을 할 수 있도록 출제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어느 정도의 사전 지식을 가지고 있느냐를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제시문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분석해서 활용하느냐를 평가하겠다는 것이지요.
고려대 연세대의 또 하나 공통점은 서론, 본론, 결론의 전형적인 논술 틀에 연연하지 말라는 점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요구하는 글자 수가 고려대의 경우 문항당 400∼700자, 연세대의 경우 800∼1000자인 것을 감안할 때 논제에 대한 직접적이고 집중력 있는 답안의 글을 요구한다는 것이지요.
창의력 있는 글을 쓰라고 강조하는 점도 고려대 연세대의 논술 경향으로 눈여겨봐야 할 대목입니다. 창의력은 어느 대학이나 두루 강조하고 있지만, 거기에 어느 정도 무게를 두느냐 하는 점에서 대학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한 예로, 숙명여대는 창의력에 초점을 맞추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즉 창의력을 측정하기는 하지만, 결정적인 평가요소로 보지는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와 달리 서울대와 고려대 연세대는 창의력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창의력의 핵심은 주어진 논리를 다른 것에 적용하는 능력, 즉 응용적 사고능력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물론 서울대에서 요구하는 창의적 사고능력과 고려대 연세대의 그것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서울대의 문제는 구체적인 문제해결 능력, 즉 ‘방안’이나 ‘대책’까지 논술할 것을 요구하는 반면, 고려대 연세대는 새로운 상황에 대한 적용과 논거 활용 능력을 물어본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예를 들면, 고려대 예시문항 중 3번 문항은 ‘제시문들을 참고해서 전력소비량이 급격히 증가한 이유와 의미를 사회변동과 관련시켜서 논술하라’는 것입니다. 또 연세대의 3번 문항은 ‘제시문의 주장을 대비하면서 사회와 문화는 진보해 왔는가에 대해서 서술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 유형은 주어진 제시문에 대한 분석에 기초하되, 새로운 논거를 끌어들여서 자신의 견해를 적용하고 논리적으로 서술할 능력이 있는지를 묻는 문제 유형들입니다.
마지막으로 고려대 연세대 새로운 논술 경향은 교과서 지문이나 신문기사를 제시문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낮다는 것입니다. 지난번에 살펴봤듯이 서울대는 교과서 지문을 일정하게 활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또 신문기사나 신문의 칼럼까지 제시문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발표한 대학도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고려대 연세대가 교과서와 신문을 가능한 한 제시문에서 피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특기할 만한 일입니다.
이것은 단편적인 사례 중심의 접근 혹은 단순히 교과서적 지식에 대한 평가보다는 제시문에 대한 분석에 기초한 논리적인 접근 능력을 평가하겠다는 의도로 이해됩니다. 물론 고려대 연세대 모두 고교 교육과정에 기초해 논술 문제를 출제하겠다고 밝힌 만큼 제시문의 주제들은 고교생이면 충분히 접근할 만한 것으로 선택될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논리적이고 본질적인 이해 능력과 논리전개 능력을 요구하겠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특별히 걱정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한 능력은 결국 제시문에 대한 독해, 분석 능력을 훈련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연세대 2008학년도 2차 예시문항을 보면서 함께 공부해 보세요 (예시문항 전문은 연세대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연세대에서 발표한 2차 예시문제는 제시문 4개가 주어 지고 문제는 모두 3개를 주었습니다.
■ [문제1] 일반적 진보인가 국지적 적응인가
논제는 <제시문1>과 <제시문2>에 의거해서 도표에 나타난 변화를 설명하고 두 제시문의 논점의 차이를 지적하라는 것입니다.
두 제시문은 모두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를 인정하는 관점입니다. 그러나 그 진화에 대한 해석이 다르지요. <제시문1>은 자연선택을 ‘진보’라고 이해하는 반면에 <제시문2>는 ‘무작위적이고 국지적 적응일 뿐 반드시 진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여기까지는 어려움이 없습니다.
두 번째 해결해야 하는 것은 이러한 논점의 차이에 따라서 도표를 해석하는 것이지요. 도표는 산업혁명 이전에는 흰색 후추나방 집단의 빈도가 압도적으로 높다가 산업혁명 이후, 즉 대기오염도가 높아지면서 흰색 나방은 도태되고 검은색 나방 집단의 빈도가 높아지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마지막으로 대기오염의 규제 이후에는 다시 흰색 나방 집단의 빈도가 높아지지요.
자, 그러면 <제시문1>의 관점에서 이것을 설명해 봅시다. ①후추나방에는 흰색 나방과 검은색 나방이라는 개체의 차이가 존재하며, ②산업혁명 전에는 흰색 나방이 자연선택되었지만, ③대기오염도가 높은 환경으로 변화되자 검은색 나방이 자연선택되고, 이러한 검은색 나방으로의 진화는 후추나방의 진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설명은 난점이 있습니다. ‘검은색 나방이 진보된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대기오염 규제 뒤의 깨끗한 환경에서 다시 흰색나방이 높은 빈도를 차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문제가 남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제시문1>의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는 설명 전략을 바꾸는 것입니다. 즉, 생물체의 진화를 말하기에는 시기가 상대적으로 너무 짧다고 설명하는 것이지요. 생물체의 진화는 아주 긴 시기를 통해서 서서히 이루어지는 것이며, 약 200년의 시간만으로 진화의 방향을 모두 결론내기는 어렵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흰색 나방과 검은색 나방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진보한 것이며 최종적으로 최적자로 생존할 것인지는 아직 결론내리기 어렵다는 설명이 가능할 것입니다.
이에 비해 <제시문 2>의 관점에서는 이 상황이 조금 더 쉽고 명쾌하게 설명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①산업혁명 이후의 대기조건에서는 검은색 나방이 최적의 생존자이지만, ②그러나 대기오염도가 높은 환경에 적응한 형태일 뿐, 검은색 나방을 후추나방의 진보적 형태라고 볼 수는 없는데, ③왜냐하면, 다시 오염도가 낮은 환경이 조성되니까 흰색 나방이 최적의 생존자로 다시 등장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것입니다.
■ [문제2] 생물체의 진화와 사회의 진화
이 문제의 요구는 <제시문3>에 나타난 인류 역사의 발전에 대한 주장과 <제시문1>에 나타난 생물의 진화에 대한 주장 사이에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 분석하라는 것이지요.
<제시문1>에서는 환경에 대한 생존경쟁에서 적응력이 뛰어난 유기체가 최적자로 자연선택 되며, 이것이 곧 유기체의 개량이자 진보라고 말합니다. <제시문3> 역시 경쟁을 통한 진보와 최적자의 생존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경쟁에서 이긴 민족이 문화의 강자가 되어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되며 이것이 인류 역사의 진보라고 바라보는 것이지요.
하지만 <제시문1>의 생물진화론과 <제시문3>의 문화진화론에는 차이점들도 있습니다. 우선 <제시문1>에서 진화의 주체는 유기체입니다. 하지만 <제시문3>에서는 집단적 주체인 민족이 진보의 주체가 됩니다. 또한 <제시문1>에서 유기체는 자연환경에 ‘적응’하는 주체입니다. 그러나 <제시문 3>의 민족이라는 주체는 단순히 환경에 적응할 뿐 아니라 환경에 ‘주체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 [문제3] 사회와 문화는 진보해 왔는가?
논제의 요구는 <제시문3>과 <제시문4>의 주장을 대비하면서 ‘사회와 문화가 진보해 왔는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라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접근하려면 우선 ‘사회와 문화는 진보해 왔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제시문3>과 <제시문4>의 입장이 어떻게 다른가를 정리해야 합니다. <제시문3>은 앞서 본 것처럼 진보해 왔다고 보는 것이지요. 반면에 <제시문4>는 그렇지 않다는 입장입니다. 옛날에는 ‘큰 도가 행해지는 대동사회였으나’ 지금은 ‘예도(禮道)가 행해지는 소강사회’라는 것이지요. 따라서 사회와 문화는 퇴보하는 것이거나, 최소한 진보하는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는 관점입니다.
그 다음에 고려할 것은 두 제시문에서 진보 혹은 퇴보를 말하는 기준이 어떻게 다른지를 살피는 것입니다. <제시문3>에서 말하는 진보는 민족의 정서적이고 지적인 능력, 즉 문화적 능력, 환경과 사세(事勢)에 대한 창조적 적응력입니다. 또한 이런 측면에서의 민족의 경쟁우위와 생존능력을 의미하지요. 반면에 <제시문4>에서 퇴보의 근거는 재화의 공유냐 사유냐, 관직에 합당한 자를 선출하느냐 세습하느냐, 상호 신뢰친목이냐 경쟁이냐, 내 가족을 넘어서서 모두를 배려하느냐 가족이기주의가 지배하느냐의 차이입니다. 그런 점에서 <제시문 4>는 다분히 도덕적 측면에서의 퇴보를 말하고 있는 셈입니다.
자, 이제는 자신의 견해를 고민해야 할 순서입니다. 만일 <제시문3>의 견해에 근거해서 진보한다고 생각한다면, 자신이 생각하는 진보의 근거를 <제시문3>에서보다 발전시켜서 제시해야 하고, 나아가 <제시문 4>의 논점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함께 제시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역사는 인간에게 주어진 자연적·사회적 도전과 문제 상황에 대한 인류의 응전의 과정이었고, 이러한 문제해결 능력이 강화되는 진보의 과정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연적 재해를 극복하는 능력의 향상, 사회적 모순들을 해결하면서 더욱 많은 사람의 자유가 보장되는 방향으로 제도가 개선되어 왔다는 것을 근거로 드는 것이지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제시문4>는 도덕적 회한과 회상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견해라고 비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성세대는 신세대에 대해서 “요새 아이들은 버릇이 없다”고 말하지만, 과거에 기성세대도 그보다 어른세대에 의해 같은 말을 들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지요. 인간성이나 도덕적 차원에서 말하자면 공자시대나 지금이나 비슷한 문제들이 발생하는데, 이것으로 사회의 퇴보를 논하는 것은 과거를 그릇되게 미화하고 사회와 문화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를 회피하는 태도라고 비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사회와 문화가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택한다면 마찬가지로 그 근거를 제시하면서 <제시문3>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함께 제시하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이현 스카이에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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