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아 씨에 이어 정윤재 전 대통령의전비서관의 영장까지 법원이 기각했을 때 선후배 기자들이 보인 반응이다. 얼핏 다르게 보이지만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것이다.
기자도 꽤 오랜 기간 법조계를 취재했다. 6월 민주항쟁의 결실인 대통령 직선제를 거쳐 탄생한 6공화국 초기에 검찰은 핵심 권력 기관이었다. 국가안전기획부와 경찰 등 다른 권력기관이 5공 때에 비해 약화된 데다 검찰 출신의 특정 인사 때문으로 기억된다.
세상이 두 번 변할 만큼 세월이 흘렀다. 검찰이 이제 법원을 향해 “권력기관화하고 있다”고 푸념한다. 격세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정상명 검찰총장은 정 전 비서관의 영장이 기각된 다음 날 오전 청계산에 올랐다. 산 정상에서 검찰이 처한 곤혹스러운 현실과 불확실한 미래가 겹쳐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그의 머릿속은 꽤나 복잡했을 법하다.
허탈한 심사를 달래려고 산으로 간 검찰총수와 취임 2주년을 조용히 치른 이용훈 대법원장의 최근 동향은 대비가 된다.
이 대법원장은 주권자인 국민을 섬기는 ‘열린 법원’에 대한 집념이 강하다. 그런 만큼 ‘사법 적극주의’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다고 한다. 그 골자는 ‘법원이 적극적인 정의 실현의 자세로 법을 해석하고 적용해야 하며 단순한 법조문 해석에서 나아가 법을 창조하는 기능까지 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한 중견 법관은 “법원이 권한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권력기관의 일탈을 견제하고 민감한 사회 이슈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판단을 해 주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권력형 비리 관련자에 대한 최근 영장 기각은 문제의 소지가 분명히 있다.
법원은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 ‘소명이 부족하다’는 것을 기각 이유로 내세웠다. 그러나 권력형 비리라는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하지 않고 다분히 형식 논리에 치우쳐 판단한 것 같다고 검찰은 비판한다. 소명이 완벽하면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또 증거인멸 우려가 있을 때는 소명이 부족하다고 기각한다며 검찰 내부에 원성이 자자하다. 한마디로 영장 발부 기준과 원칙이 무엇인지 알기 힘들다는 것이다.
인권 보호를 위해 불구속재판의 원칙을 천명하는 법원의 방향은 맞다. 그러나 권력형 비리를 저지른 사람에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만큼 필부필부(匹夫匹婦)에게도 그렇게 하고 있는가. 또 법원이 소수자 문제나 각종 차별과 관련한 판결을 통해 사법적극주의를 표방하는 데는 소홀하면서 혹시 영장 기각에만 적극적인 것은 아닌가. 법원은 이런 물음들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법원과 검찰 간의 사법주도권 공방이 최근 사태의 배경 중 하나라는 시각도 법조인들 사이에 퍼져 있다.
20년 세월이 흐른 지금 법원의 변화는 괄목할 만하다. 판결문으로 말한다며 나서기를 거부하던 법관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오히려 검찰이 수세에 몰려 있는 듯하다. 1일 열린 고검장회의가 이를 상징한다.
한 원로 법조인은 “검찰도 자성하고 법원도 우월의식을 버려야 한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의 이치를 되새겨 봐야 한다”고 충고했다.
하늘에 뜬 달이 ‘차면 기울듯’ 절제를 모르는 권력은 언젠가 부메랑을 맞게 된다.
최영훈 사회부장 tao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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