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관광객들을 가득 태운 관광버스 여러 대가 한쪽에 멈춰 섰다. 일요일 아침 일찍부터 이들이 찾은 곳은 중국 전통 음식점인 ‘진북경’.
이들이 자리에 앉자 중국식 아침 식사인 ‘자팅찬(家庭餐)’이 테이블에 올려진다.
진북경이 내놓는 자팅찬은 죽인 ‘저우(粥)’, 중국식 콩국인 ‘더우장(豆醬)’, 기름에 튀긴 꽈배기의 일종인 ‘유탸오(油條)’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날 오전 이 가게를 찾은 중국인 관광객만 700여 명.
진북경의 지배인이자 화교인 원민 씨는 “평일 오전에도 500명 이상의 중국인이 가게를 찾는다”면서 “이 중 60% 정도는 중국 본토에서 온 중국인이고 나머지 40%는 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에서 온 화교”라고 소개했다.
중국인들도 찾는 중국인 거리, 이곳은 바로 연희·연남동 차이나타운이다.
○ 학교 중심으로 화교들 모여
2006년 말 현재 서울에 사는 8937명의 화교 중 3820명이 이 지역에 거주한다. 사업 등의 이유로 한국에 온 중국 본토인들도 의사소통이 편리해 이 지역에 정착하는 경우가 많다.
연희1동에 있는 한성화교 중고교에는 628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운동장 양측에 세워진 쑨원(孫文), 장제스(蔣介石)의 동상을 통해 ‘중국인 학교’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교과 과정은 대만과 똑같고 교과서와 교재 등도 모두 대만 정부가 보내 준다. 교실마다 설치돼 있는 TV에서는 중국의 CCTV와 대만의 오락 채널 등을 볼 수 있다.
한때 이 학교 졸업생들은 가업인 중국음식점을 물려받았지만 요즘은 50% 정도가 한국의 기업에 취직하거나 다른 개인 사업을 한다.
이 학교에서 24년째 교편을 잡고 있는 노내걸 씨는 “예전에 비해 화교에 대한 규제가 많이 완화돼 졸업생들이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 연희동은 고급 음식점, 연남동은 만두 전문점 많아
서대문구 연희동 연희맛길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는 화교들이 운영하는 고급 중국음식점이 즐비하다.
진보, 이화원, 걸리부 등 화교들이 운영하는 고급 음식점들은 1인당 3만∼5만 원대의 다양한 코스 메뉴를 선보인다. 자장면 짬뽕 같은 기본 메뉴도 있지만 구색을 갖추는 정도다. 중국 요리는 산둥(山東) 광둥(廣東) 쓰촨(四川) 베이징(北京) 요리 등으로 분류되지만 이곳에 있는 중국 음식점들은 ‘전공’이 분명하지는 않다.
이 동네 중국음식점 주방장은 “한국 손님 입맛에 맞추다 보니 메뉴가 비슷해진 것”이라며 “비슷한 요리를 만드는 음식점이 많다 보니 맛이 조금만 떨어져도 손님이 뚝 끊긴다”고 말했다.
연희동과 달리 마포구 연남동에는 홍복, 향미 등 만두를 파는 가게가 많다.
홍복은 10년 전쯤 이 동네에선 가장 먼저 왕만두를 팔기 시작했다. 잘게 다지지 않은 고기, 야채로 속을 채워 씹는 맛이 독특하다. 홍복에서는 몽골식 양고기 구이도 맛볼 수 있다. 이 동네의 왕만두 1인분은 4000∼6000원.
○ 차이나타운 공인은 아직 못받아
중국인들이 많이 살지만 이 지역은 공인받은 ‘차이나타운’은 아니다.
세계 대도시에 차이나타운이 없는 나라는 한국뿐이라는 지적이 나올 만큼 한국은 화교들에게 배타적이었다. 1970년대 중반에는 차별을 견디지 못한 많은 화교가 대만으로 돌아가거나 미국 등지로 이민을 떠났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이곳에 차이나타운을 만들자는 의견이 나왔다.
또 마포구도 연남동 일대에 차이나타운을 건설한다는 계획을 올해 초 발표했지만 아직 실행 여부는 미지수다. 마포구는 5차례나 주민간담회를 열었지만 주민들의 반발이 만만찮다. 특히 고급 빌라가 많은 연희동 주민들 쪽에서 차이나타운 건설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서대문구 관계자는 “연희 1동에만 9개의 은행 지점이 있을 정도로 화교들의 경제력은 높은 수준”이라며 “하지만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찬성하지 않으면 사업 추진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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