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 재정난 뒤에 ‘얌체 무임승차族’

  • 입력 2007년 10월 10일 03시 02분


친정-시부모에 언니 동생까지 총 11명이 피부양자

직장인 A(29·여) 씨는 매달 평균 6만5000원의 건강보험료를 내고 있다. A 씨는 ‘소득이 없는’ 남편(28), 할머니, 친정부모, 시부모, 큰언니(33), 작은언니(29), 남동생(25), 여동생(26) 등 10명을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등록했다. 모두 11명의 가족이 매달 6만5000원으로 모든 의료혜택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거주지는 모두 다르다. A 씨를 비롯해 5명은 경기, 4명은 제주, 2명은 각각 부산과 경남에 살고 있다.

10명의 피부양자가 소득이 없다는 것도 믿기 힘들다. A 씨의 친정아버지는 1995년, 시아버지는 1999년, 시어머니는 2006년, 언니 한 명은 2000년부터 국민연금 보험료를 꼬박꼬박 내고 있다.

소득신고를 하지 않으면 국민연금 보험료를 낼 수 없다. 결국 A 씨 가족은 노후보장용으로 연금은 들었지만 건강보험료는 아까워서 내지 않고 있다는 의혹을 피할 수 없다.

경기 평택의 직장인 B(31·여) 씨도 피부양자 10명 중 남편, 친정부모와 동생은 국민연금 지역가입자로서 연금보험료를 꼬박꼬박 내고 있다.

▽피부양자 제한 없어=건강보험 직장가입자는 소득이 같으면 피부양자가 1명이든 10명이든 보험료가 같다. 월급이 288만 원이면 피부양자의 수에 관계없이 건강보험료는 6만4510원(2006년 기준)을 동일하게 낸다. 지역가입자는 동일 지역에 사는 가족이 아니면 피부양자로 등재할 수 없지만 직장가입자는 이런 제한이 없다.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르면 △직장가입자와 친인척 관계이며 △직장가입자에 의해 생계를 유지하고 △본인의 소득 또는 보수가 없으면 피부양자로 등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점을 악용해 소득이 있으면서도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로 등재해 건강보험료를 탈루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본보가 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전재희 의원이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직장가입자 피부양자 현황 자료’를 단독 입수해 분석한 결과 6월 말 현재 피부양자가 10명 이상인 직장가입자가 8674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 8674명 중 무작위로 50명을 골라 국민연금 가입 및 납부 현황을 분석한 결과 41명의 피부양자 가운데 적게는 1명, 많게는 4명까지 국민연금에 가입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건강보험 피부양자가 10명 이상인 직장가입자의 82%가 피부양자의 소득을 숨기고 건강보험료를 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올 2월 복지위에서도 지적됐지만 개선책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 당시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 중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고 있는 가입자가 8만72명이란 사실이 드러났다.

▽외국은 피부양자 조건 엄격=피부양자의 무임승차로 인해 국내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의 1인당 평균 피부양자는 6월 말 현재 1.66명이다.

이는 건강보험제도를 운영하는 주요 국가와 비교했을 때 1.5∼3.4배 수준이다. 2004년 국민건강보험발전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일본은 1인당 평균 피부양자가 1.09명, 독일은 0.37∼0.72명이며 대만은 0.72명, 프랑스는 0.56명이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어른을 모시는 한국 정서상 피부양자의 수를 제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적발되는 대로 피부양자의 소득을 파악해 피부양자 자격을 박탈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 의원은 “다른 국가의 경우 피부양자 대상을 직계 존비속이나 미성년 자녀, 소득 없는 배우자로 한정해 관리한다”며 “우리나라는 그런 제한이 없어 무임승차가 광범위하게 일어나 건강보험 재정 악화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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