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의미 강박증’은 북쪽만의 일이 아니다. 20세기 초에는 운동회와 원족(遠足·소풍)에도 명분이 따라붙었다. 무엇을 하건 ‘체력과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키워 나라 보존에 힘쓴다’는 비장함이 서려 있었다. 1970년대 ‘로봇 태권브이’에서조차 악은 반드시 망한다는 가르침이 뚜렷하다. 태권브이는 ‘붉은별 제국’과 그냥 재미로 싸우지 않았다.
그러나 요새 인기를 끄는 연예 프로그램에서는 ‘명분’을 찾기 어렵다. 주말 저녁 텔레비전을 보며 ‘도대체 결론이 뭔데.’라며 스스로 되물어 보라. 답은 좀처럼 찾기 어렵다. 목적이라면 그냥 웃고 즐기는 것뿐이다.
심지어는 기승전결(起承轉結)의 구도조차 없다. 인사도 없이 시작해서 마무리 없이 끝난다. 재미있는 장면만 보여주면 된다는 식이다. 20여 년 전이었다면 시청자에게 무례하다는 삿대질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시청자들은 심각해지기는커녕 재미만 느낄 뿐이다. 문화의 중심은 어느덧 의미 찾기에서 느낌으로 옮아가 버렸다. 순간 짜릿하다면 형식이나 의미 따위는 대수롭지 않다. 이런 모습은 손수제작물(UCC)에서 더 분명하다. 앞뒤 자르고 가장 재미있는 부분만 추릴수록 순위가 올라가지 않는가.
책이나 신문 같은 글자매체에 닥친 어려움은 이런 분위기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긴 호흡의 논리와 설득으로는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어렵다. 짧고 강렬한 이미지만 눈길을 끄는 문화에서 종이에 적힌 글이 호소력을 잃어 가는 것이다. 이제 글자문화는 영상에 밀려 주저앉고 말 것인가.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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